본 글은 ‘아이 없는 대한민국’이란 표제로 기획된 대학원신문 사회면에 기고하였으며, 원문 편집을 거쳐 브런치에 업로드합니다.
① 저출산 현황과 심각성 ② 저출산 제도의 현실 ③ 저출산에 대한 MZ세대의 생각 ④ 저출산의 미래는
출처 : 대학원신문(http://gspress.cauon.net)
https://gspress.cauon.net/news/articleView.html?idxno=3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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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출산 시대에 접어든 한국 사회에서 저출산 담론은 대부분 경제적 요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부동산 가격 상승, 수도권 집중화, 청년 세대의 고용 불안, 사교육비 부담 등은 자녀 출산을 주저하게 만드는 명백한 장애물로 수없이 지적되어 왔다. 하지만 청년층의 심리적, 사회문화적 특성도 출산율 하락에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 글은 그 중에서도 ‘불확실성 회피’라는 MZ세대의 특성과 출산 기피 간의 관계를 분석하고자 한다.
다수의 심리학자들은 MZ세대가 과도한 경쟁, 성취 중심 문화, SNS 기반의 비교사회 속에서 자라며 높은 수준의 불안과 완벽주의 성향을 갖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실패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삶의 모든 측면을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탐색하고 준비한다. 이제 모든 중요한 선택은 사전에 미리 계획되고 최대한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여기에 더해 SNS와 정보 과잉으로 인해 타인의 성공적인 삶과 자신의 삶을 일상적으로 비교하기까지 이르렀다. 한편, 전세계가 면밀하게 상호 연결된 현대 사회에선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이 오히려 빈번하게 발생한다. 글로벌 금융 위기, 코로나 판데믹 등이 그것이다. 즉, 젊은 세대의 상당수는 통제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해서 불신하며, 결과적으로 불확실성을 극도로 기피하게 되는 사회심리적 특징을 지닌다.
하지만 결혼, 임신, 출산, 양육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인생 여정에는 본질적으로 엄청난 불확실성이 동반된다. 일단 타인과 장기적인 짝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에 통제할 수 없는 요소가 많다. 그나마 결혼이 성인간의 일대일 관계라면, 아기라는 변수가 방정식에 추가되면 일은 끝없이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현대 의학이 발달한 지금도 임신의 시점, 가능성, 태아 성별, 태아의 건강을 원하는 대로 결정하거나 전적으로 제어할 수는 없다. 게다가 여전히 출산은 어느 정도 위험하고 신체에 부담스러운 일이다. 전근대에는 아이를 낳다가 산모가 목숨을 잃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지금도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합병증이 생길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만약 아기가 무사히 태어나도, 불안은 끝나지 않는다. 인간 아기는 다른 생물에 비해 부모에 대한 의존성이 매우 높다. 양육자는 기본적인 욕구조차 혼자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가련한 존재를 오랜 세월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그러니 그 긴 양육 기간 동안 발생할 수 있는 변수는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다. 당장 오늘을 무사히 보냈다고 해서 안심하기에도 이르다. 성장기의 인간은 매일같이 변화하니, 함부로 미래를 예측할 수도 없다. 자식 농사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문제는 이 여정의 내재적 성질이 MZ세대의 가치관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것이다. 불확실성 기피가 좌우하는 젊은 세대의 삶은 사전에 정밀하게 계획되어 있어서, 조금의 낭비나 변수를 허용할 수 없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진료실에서 만나는 많은 예비 부모들이 막연한 불안과 확신에 대한 갈망을 갖는 것을 경험한다. 일례로 최근 제왕절개로 출산하는 사례가 크게 늘어난 것은 의료적 필요와 무관하게, 출산 일정을 통제하고 예측도를 높이려는 심리적 동기에서 기인한 면이 있다. 어떤 이들은 아이의 출생을 또래 경쟁에서 유리하다고 알려진 연초 시기로 맞추기 위해서 임신을 철저히 계획하고, 원하는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다음 해로 미뤄버린다. 심지어 태아의 건강 상태에 대해 완벽한 확신을 얻고자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검사를 요구하는 경향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불리한 요소를 사전에 전부 차단해서 불안을 덜고 싶은 이들이 점점 늘어남을 체감한다.
여기에 소비 지향적 육아 문화와 극단적 경쟁이 불안을 더욱 부추긴다. 아이를 잘 크게 해 준다는 온갖 육아 용품과 과잉 정보, 자녀의 미래 성공을 보장한다는 현혹적인 사교육 등은 손쉽게 부모의 심리를 파고든다. 이들은 SNS를 위시한 정보의 파도에 올라타서 MZ세대의 마음 속에 성공적으로 자리잡으며, 양육에 수반되는 온갖 불확실성을 일소해 주겠다는 달콤한 약속을 남발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치러야 하는 대가는 지나치게 높아지고 양육자의 정신력은 만성적으로 고갈된다. 애초에 출산을 주저하게 될 만큼 부모됨의 비용과 노력이 비대해진 것에는 젊은 세대의 심리적 성향이 재생산 자체와 충돌한 것도 중요한 원인이다.
모든 선택이 최선이어야 하고, 모든 변수를 삭제해야 하는 토양은 퍼석하고 메마르기 그지없다. 그런 경직된 환경에서는 가변적이고, 잠재적이며, 유연함이 필수적인 재생산(짝 맺기-임신-출산-양육)이 일어나기 어렵다. 애초에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본질적으로 등수를 매길 수 없으며 앞날이 불투명한 장기전이다. 그렇기에 개인도, 사회도 이 거대한 불확실성을 포용하고 소화할 수 있도록 저출산 담론의 방향성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는 젊은 세대의 심리적 구조와 가치 체계를 이해하고, 인생의 통제 불능성을 최대한 견딜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출산으로 가는 길에 놓인 치명적인 장애물은 최대한 두 팔 걷고 나서서 관리해야 한다. 일-가정 균형, 건강과 신체적 취약성, 주거와 고용 안정성과 같은 중대한 문제가 우호적으로 뒷받침되어야 개인이 지나친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수많은 출산 장려 정책들이 단순한 일회성 선심을 초월하여 진정으로 젊은 세대의 경쟁을 완화하는지, 삶에 대한 신뢰와 여유를 회복하도록 돕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한편, 출산과 양육의 내재적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할 필요도 동시에 존재한다. 모든 변수를 통제하려는 완벽주의는 오히려 출산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문화적 가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충분히 좋은 부모(good enough parent)’라는 용어를 출발점으로 삼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이는 아이를 완벽히 키우지 않아도 괜찮으며, 부모로서 기본적인 책임과 애정이 있다면 충분하다는 정신분석학적 제안이다. 이 개념이 보다 널리 공유된다면 부모 역할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낮추고, 다양한 양육의 형태가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문화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은이들이 삶에서 체감하는 경쟁 밀도를 낮추고, 취약자를 배려하는 연대를 구축하고, 지나친 불안과 통제욕을 낮출 방법을 찾아보자. 그러면 인간은 자신의 유전자를 시공간 축에서 확장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욕구에 호응하게끔 되어 있다. 출산도, 출산율도 절대선이 아니다. 다만 자녀를 낳고 기르는 총체적 경험이 어떤 방향성을 지녀야 사회 구성원들이 더 행복하고 만족스러울지, 그것을 고민해 볼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