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를 임신하고 여자아기인 것을 알게 되었다. 샛노란 아기 옷을 한 벌 샀다. 다른 육아 용품은 첫째아이 물건을 쓰면 되지만, 산뜻한 새 옷 한 벌 정도는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자궁경부무력증과 수술을 거치면서 그 옷을 옷장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다. 혹시 아기가 잘못되면, 저 옷을 어쩌나 싶었다. 괜히 샀다. 도저히 버릴 수도, 둘 수도 없다.
나는 이 시리즈를 너무 무겁게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행여나 읽는 이들이 겁을 먹을 까봐 나름의 배려를 한 것이다. 그래도 고위험 임신은 위협적이고 심신이 힘들다. 나쁜 결과를 맞이하고 마음이 산산히 부서지는 이들을 의사로서 수도 없이 만났다. 고위험 임신을 경험하며 나 자신도 마음 졸였다. 배내옷을 옷장에 넣었다 꺼냈다 반복해가며. 그러니 단순히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 안다. 내 아기가 잘못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아주 구체적인 이미지를 지향해야 한다. 내 경우에는 깊은 뿌리를 내린 거목이었다. 그 나무가 가진 굳건히 버티는 힘이었다.
마음 졸이는 고위험 임신
“엄마 뱃속 하루가 인큐베이터 일주일”이라는 말은 산과에서 흔히 쓰는 표현이다. 조산의 위험이 있을 때, 우리는 이 말로 산모를 설득한다. 하루만 더 버티자, 일주일만 더, 한 달만 더. 산모는 참고 또 참는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오늘도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도한다. 엄마는 기꺼이 살아있는 인큐베이터가 된다.
하지만 인큐베이터엔 감정이 없고, 산모에겐 있다. 연구에 따르면 고위험 임신 산모의 37%가 중등도 이상의 우울 증상을, 43%가 불안 증상을 경험한다. 일반 임신부의 우울증 유병률이 약 12%임을 고려하면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입원 치료를 받는 경우 이 비율은 더 상승한다. 치료의 불확실성, 경제적 부담, 가족과의 분리, 그리고 무엇보다 태아에 대한 끊임없는 걱정—이 모든 것이 산모를 우울과 불안으로 몰아간다. 실제로 고위험 산모는 산전우울증의 고위험군이며, 선제적 관리가 필요하다.
정신적 고난은 출산으로 끝나지 않는다. 만삭 출산에 아기가 건강하다면 다행이지만, 고위험 임신의 끝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NICU에 입원한 아기를 보며 느끼는 죄책감(“내가 제대로 임신을 유지했다면”), 모유수유를 할 수 없을 때 느끼는 박탈감, 다른 산모들이 아기를 안고 퇴원하는 모습을 볼 때 느끼는 상실감. 연구에 따르면 조산을 경험한 산모의 산후우울증 발생률은 일반 산모의 2배 이상이며,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을 보이는 비율도 유의하게 높다.
모든 임신은 끝난다
고위험 임신이 힘들다는 점은 변하지 않겠지만, 마음의 뿌리를 단단히 내리면 적어도 부담은 덜할 수 있다. 고위험 산모의 정신력을 갉아먹는 것은 고통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막막함, 전부 내 탓이라는 죄책감,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 등이다.
임신은 영원하지 않다. 버티다 보면 끝이 온다. 24주에서 28주로, 28주에서 32주로, 32주에서 36주로—매주가 의미 있다. 그래서 나는 환자들에게 임신을 작은 단계로 나누어 생각하라고 권한다. “40주까지 버텨야 해”라는 거대한 목표보다는 “이번 주까지만”, “다음 초음파 검사까지만”이라는 작은 목표가 심리적으로 더 감당 가능하다.
내가 말하고 싶은 ‘버팀’은 넓은 의미를 지닌다. 출발은 고위험 임신이라는 현실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라는 질문에서 “이것이 내 임신의 현실이구나”라는 인정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또한 자꾸만 최악의 시나리오로 끌려가는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우리를 흔드는 과도한 불안으로부터 중심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
나무가 자라는 방식
나무는 제자리에 서 있다. 폭풍이 와도 뿌리를 뽑고 달아날 수 없고, 가뭄이 와도 물을 찾아 떠날 수 없다. 나무는 역경의 원인을 제거할 수 없다. 폭풍을 멈출 수도, 추위를 몰아낼 수도 없다. 하지만 나무는 시간을 견디는 그 자체로 성장한다. 가지를 뻗고 열매를 맺는다. 나무는 움직이지 않지만 분명히 나아간다. 그러니 한 그루의 나무와 같이, 미래라는 분명한 방향성을 지닌 것이 버팀의 본질이다. 단순히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시간 속에서 뿌리를 깊게 하는 힘이다.
고위험 임신 끝에 좋지 못한 결과를 맞이한 분들이 혹시 이 글을 읽으며 자책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잘 버티지 못한 것일까”, “내가 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면”, “내 의지가 강했더라면”—이런 생각들이 당신을 괴롭힐지 모른다. 나는 이 순간에도 버팀의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뿌리가 깊은 마음은 불필요한 죄책감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한다. “내 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자책에서 벗어나 “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한다”고 마음을 다잡아간다.
함께 해내는 일
마지막으로, 고위험 임신은 산모 혼자만의 몫이 아니다. 배우자도 버틴다. 불안한 아내를 지지하면서 자신의 두려움도 다스려야 한다. 가족도 버틴다. 경제적 부담과 일상의 변화를 감당하면서 산모를 돕는다. 의료진도 버틴다. 때로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야 하고, 분초를 다투는 결정을 내려야 하며, 밤낮없이 산모를 돌보면서도 냉정함을 유지해야 한다.
고위험 임신을 겪고 있거나, 경험한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 불안을 견디는 것, 상처를 극복하고 희망을 놓지 않는 것—그 모든 것이 버팀이고 용기다. 나무가 한겨울을 견디며 봄을 준비하듯, 당신도 지금 이 순간을 견디며 새로운 생명을 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