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 산모의 멘탈 관리

살면서 변비로 고생해 본 적이 없는 나는 장건강 천재다. 수험생 때에도, 전공의 때에도, 임산부 때에도 1분컷 쾌변을 자랑했다. 그런 내가 자궁경부 수술 3일차를 맞아, 병동 화장실만 들락날락하며 변을 못 보고 있다. 끙끙대다가 회진 때 변비약을 요청했다.


“수술 직후 누워있었으니 변비가 쉽게 옵니다. 약 처방 해드릴게요.”

“네 그것도 그런데요… 무서워서 변을 못보겠어요.”

“무섭다니요?”

“아니 왜… 만약에 힘주다가 애기 쏙 빠지면 어떡해요?”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분명히 어이 없는 헛웃음이 느껴졌다!


“어휴, 알 만한 분이 왜 그래요. 지금 변 본다고 애기 안 나옵니다. 걱정 마세요.”


교수님은 장난스럽게 나를 구박하고 병실을 나섰다. 똥 누다가 출산하는 게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그런 걱정하느라 화장실도 못 가는 건 말도 안 된다. 게다가 나도 산부인과 의사. 내 상태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서 비현실적인 공포를 가질 필요는 없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약간 무안해졌다. 아니지, 애초에 왜 불안에 사로잡힌 거지?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산모는 원래 예민하다.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태아 및 영유아의 보호자가 예민하지 않으면 아기는 살아남을 수 없다. 작은 위험 신호도 놓치지 않는 민감성, 뭔가 이상하면 바로 확인하려는 강박, 최악의 시나리오를 미리 대비하는 성향. 이 모든 게 핵심적인 생존 메커니즘으로 우리 안에 남아있다. 일례로 ‘현격한 태동 감소’는 산모만이 감지할 수 있는 위험 신호다. 민감한 산모는 이 상황을 놓치지 않고 적시에 병원에 방문해서 위기를 넘긴다. 그러니 정상적인 수준의 예민함을 두고 유난 떤다고 눈을 흘길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지켜야 할 것이 있을 때의 적절한 경계 태세이다. 게다가 고위험임신은 실제로 위협적이다. 당연히 불안이 더해진다.


고위험 임신과 과잉 정보


불안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민감한 성향은 정보 폭탄과 궁합이 좋지 않다. 현대적 정보 환경의 특징은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불안한 사람이 무제한적 정보에 노출되기 시작하면 헤어 나오지 못한다. 수많은 고위험 산모가 진단명과 사례를 검색하느라 밤을 지새운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평범한 임신이 아닌 만큼 모든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비슷한 상황의 산모가 예후가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접하면, 하루 종일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기 십상이다. 시간이 많다는 것도 문제다. 고위험 산모는 침상 안정과 휴직 등으로 기존의 근무, 육아, 가사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된다. 정신은 말똥말똥한데, 바깥 활동도 할 수 없다. 갑작스러운 일상의 공백을 손 안의 스마트폰이 메워준다. 침대에서 검색 여행을 떠나기에 딱이다. 마지막으로 정보 획득을 통제력을 회복할 수단으로 삼는 경향이 생긴다. 내 아기를 위해서 뭘 더 노력해야 하지? 내가 아직 모르는 좋은 비법이 있지 않을까? 끊임없이 방법을 탐색하여 고위험 임신의 무력감을 희석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얻어낸 정보 및 그 탐색의 과정이 그리 유익하다고 볼 수 없다. 그래서 의사들은 언제나 인터넷 검색을 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첫째는 틀린 정보가 많다. 특히 임신과 출산 관련된 세간의 이야기는 미신이나 민간요법에 불과한 것도 있다. 둘째, 정보 추구는 중독적이다. 뇌는 새로운 정보를 얻으면 도파민을 분비한다. 하지만 쾌감은 오래가지 않는다. 곧바로 또 다른 새로운 정보 자극을 추구한다. 마지막으로 끝없는 검색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경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피로와 과도한 긴장 상태가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은 자명하다.


때로는 틀렸다고는 할 수 없는 정보조차 편향성을 내포한다. 우리가 가장 쉽게 접하는 정보들은 중립과 거리가 멀다. 인기 있는 SNS 플랫폼은 조회수를 빨아먹고 산다. 그리고 자고로 공포는 가장 좋은 마케팅 수단이다. 당장 이 글만 봐도 그렇다. “고위험 산모 멘탈 관리” 같은 무난한 제목보다는, “고위험 산모, ○○하면 절대로 안 되는 다섯 가지 이유” 같은 도발적 제목을 붙이면 아무도 클릭을 참지 못할 것이다. (조회수를 높이려면 지금이라도 제목을 바꿔볼까?) 이러한 정보 생태계에서는 작은 사실의 조각을 부풀리고, 극단적으로 불안을 조장하는 콘텐츠가 성공한다. 클릭하는 순간 우리는 미끼를 물고 늪에 빠진다. 알고리즘이 끝도 없이 같은 부류의 콘텐츠를 추천하기 때문이다.


불안의 늪에서 헤쳐 나오기


물론 처음 검색창을 열었을 때에는 나의 고위험 임신에 대해 한 번 알아본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점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된 거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지? 내가 뭘 해야 상황이 좋아질까? 나는 이 세 가지 의문을 각각 인과 중독, 서사 중독, 통제 중독이라고 부른다. 악재를 맞이했을 때 이런 의문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문제는 궁금증이 영영 해결되지 않은 채로 우리의 모든 신경과 주의력을 독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단순한 궁금증이 어느새 집착으로 돌변한다.


먼저 인과 중독에 대해 부연하겠다. 나쁜 일이 생기면 ‘범인’을 찾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 과정은 다인적이고 복잡하기 때문에 인과가 애매하다. 각각의 임신 합병증도 보편적 위험 인자기 알려져 있는 정도이지, 개별 산모에서 인과적 원인은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나는 임신 초기에 지속적인 출혈을 경험했다. 이런 상황을 절박유산이라고 부르는데, 비교적 흔하지만 유산 가능성이 염려되는 상황이다. 왜 나에게 절박유산이 생겼을까? 일반적인 설명은 시도할 수 있다. 나이가 많아서일 수도,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무리해서일 수도, 자궁의 자체적 문제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 나이 때문에 절박유산이 생긴 것일까? 내가 36살이 아닌 34살에 임신했으면 절박유산이 없었을까? 가능성은 있지만, 진실은 영원히 알 수 없다. 젊어도 출혈은 생길 수 있고, 노산모도 출혈이 없을 수 있다. 그저 개연성이 있다는 것뿐이다.


서사 중독은 인간의 뇌가 이야기를 가장 잘 수용하는 경향에서 기인한다. 우리는 통계적 수치나 건조한 사실의 나열보다는 인물 중심의 서사를 쏙쏙 흡수한다. 그러니 불안한 고위험 임신 상태에서 타인의 경험을 통해 나의 미래를 예상하고 싶다. 동질성을 지닌 사람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감정적으로 이입하고 위로를 받고 싶다. 하지만 인터넷에 글을 쓰는 사람들은 대체로 괴로움이 많았던 사람들이다. 임신 결과가 좋았던 사람들은 육아하느라 바쁘다. 그러니 후기를 자꾸 찾다 보면 편향적으로 나쁜 사례를 보면서 스트레스받을 것이다. 비극으로 끝난 고위험 임신 사례가 주는 정서적 상처는 꽤나 강력해서, 한동안 기억을 지배하고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나는 고위험 임신 끝에 만삭 출산을 했음에도 이렇게 긴 글을 쓰고 있는 예외적 산모다. 이유는 척추가 부러져서 육아를 할 수 없는 와병 환자이기 때문이다. 완전 럭키비키…?)


마지막은 통제 중독이다. 우리는 노력해서 성과를 내는 현대적 사고 체계에 익숙하다. 게다가 내 아기가 달린 문제. 운에 맡기거나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뭐라도 해야 한다. 안정을 취하라는 수동적인 기조는 성에 차지 않는다. 더 열심히 노력해서 기필코 최선의 결과를 만들고 싶다. 안타까운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꼭 새로운 뭔가를 하는 것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임신은 태아가 개입된 지속적 과정이기 때문에 뜻대로 제어할 수가 없다. 오히려 근거 없는 민간요법, 검증되지 않은 보조 식품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막연하게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싶어서 자꾸만 탐색하고 수행하는 것도 엄연히 품이 든다. 통제 중독이 의심된다면, 정신적 자원을 소모적으로 쓰고 있는 것이 아닐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건전한 정신력 관리


인터넷 이용을 안 할 수는 없지만, 해로운 정보가 머릿속을 지배하지 못하게 안전거리를 유지하자. 유익한 정보는 출처와 근거가 분명하며, 공포를 조장하지 않는다. 나 자신의 상태는 다른 어떤 이의 사례와도 동일하지 않기에, 내 경과를 잘 아는 의료진과의 소통에 집중하도록 하자. 일상을 검색이 아닌 다른 활동으로 채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친구와 폭풍 수다, 영상물 정주행, 글 써보기 등등. 뭘 해도 새벽까지 침침한 눈을 비비며 검색으로 스트레스받는 것보다 이롭다.


고위험 임신은 마라톤이다. 짧아도 몇 주, 길면 몇 달을 버텨야 한다. 장기간의 에너지 안배가 중요하다. 정보 검색은 얼핏 보면 손가락만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정신적으로 피로해지고, 잠이 부족해진다. 때로는 나쁜 사례를 접하며 마음이 무너진다. 나는 차라리 이 에너지를 오늘을 잘 버텨내는 데에 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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