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의사, 천벌 받다

산부인과 레지던트 1년 차이던 어느 평범한 하루. 이 날 출근은 아침 5시 30분까지였다. 밤 사이 환자 현황과 상태를 파악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집중 감시, 태아심박 모니터링이다. 나는 고위험 산모 병동을 순회하며 산모들에게 자궁 수축 강도와 태아 심박동을 확인할 수 있는 기계를 부착한다. 검사에는 최소 20분의 시간이 소요된다. 내가 검사 결과지를 확인하면, 나의 윗년차가 확인하고, 그다음 치프 레지던트가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담당 교수가 확인한다.


물론 내가 출근하기도 전에 혈압과 같은 생체 징후(vital sign)를 간호사가 확인해둬야 한다. 그래야 전공의가 환자 상태 파악에 참고할 수 있다. 회진 전에는 그날의 혈액 검사 결과가 나와야 하기 때문에 임상병리사도 진작에 피를 뽑아갔을 것이다. 이 모든 작업이 끝나야 비로소 임상 정보를 종합해서 치료 방침을 내릴 수 있다. 혈액 검사 기계가 돌아가는 것에도, 모니터링을 수행하는 것에도, 결과를 검토하고 담당 의료진이 회의하는 것에도 시간이 걸린다. 만약 내가 통상의 회사원처럼 9시에 출근한다면, 산모들은 점심을 먹을 때까지도 그날의 계획을 전달받지 못할 것이고, 각종 의료적 절차들은 오후가 되어서야 시작할 것이다. 내 출근 시간이 그토록 이를 수밖에 없고, 신새벽부터 병동이 몹시도 부산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거의 동일한 작업을 늦은 오후에도 시행한다. 당직인 날은 밤을 지새우며 당직을 선다. 다음날 새벽에도 회진 준비를 한다. 늦은 오후에도 또또 한다. 이제 내가 잠에서 깨어난 시점으로부터 40시간쯤 지났다. 조금만 더 견디면 퇴근… 정신줄을 간신히 붙들고 기다란 회진 행렬의 말석에 자리한다. 교수님이 한 조기 진통 산모에게 설명한다.


“지금은 돌아다니시면 안 됩니다. 안정되기 전까지는, 힘들어도 되도록 누워만 계세요.”

난 멍하니 그 설명을 듣다가, 누워있는다는 말에 느닷없이 꽂힌다. 아, 나도… 나도…..


‘나도 제발 저렇게 누워 있고 싶다…!’




그래서 내가 천벌을 받은 모양이다. 세월이 흘러 둘째 임신 34주. 진짜 고위험 산모 병동에 눕게 되었다. 전공의 때에는 아무리 내 몸이 피곤하기로서니, 조산 걱정 때문에 피가 마르던 산모를 철없이 부러워했었다. 변명을 하자면… 당시엔 출근할 때마다 차에 치이는 것이 소원이었다는 점을 정상참작해주자. 정신적으로 별로 건강치 못했던 시절이다. 막상 이렇게 되니 후회와 미안함을 넘어, 꼴좋다고 해야 할까.


눕고 싶어 하더니 진짜 눕게 됨 …


내가 누운 이곳은 고위험 산모 집중 치료실, 모체태아 집중치료실(MFICU, Maternal-Fetal Intensive Care Unit)이다. 약자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곳도 ICU라서 일종의 중환자실이다. 중환자실 중에서도 모체와 태아 치료가 목적인, 상급 의료기관 산과의 핵심 시설이다. 고위험 산모 치료와 신생아 집중 치료는 젓가락처럼 쌍을 이뤄야 하기 때문에 신생아 집중 치료실(NICU)과 나란히 자리한다.


일반 병동과 중환자실이 다른 것처럼, 고위험 산모 집중 치료실도 보통의 산모 병실과 다르다. 산모의 상태가 모니터링되어 실시간으로 중앙 데스크로 집중되고, 당연히 인력도 더 많이 필요하다. 이곳에 입실하면 면회와 활동이 제한된다. 아무나 원할 때 방문할 수 없고, 아무 곳이나 자유롭게 외출할 수도 없다. 분위기도 어쩐지 묵직하고, 말도 소곤소곤해야 할 것 같다. 여기 들어왔다는 것은 이미 평범한 임신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고, 산모들은 걱정과 스트레스로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는 상태다.


8인의 산모와 그 태아들이 나란히 누운 그곳에서, 나의 실전 고위험 산모 집중 치료실 생활이 시작되었다. 지정된 시간에 산모끼리 순번을 정해서 샤워를 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도 안 힘들었다. 전공의 시절 단련된 덕분에 안 씻고 일주일도 거뜬히 버틴다. 남편과 첫 아이를 못 보는 것도 그럭저럭 참을 만했다. 어차피 이럴 때 아니면 떨어지고 싶어도 떨어질 수도 없는 사이 아닌가.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검사받는 것은 고역이었다.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는 굳이 또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첫 문단에 이미 답이 다 나와있으니. 자다가도 혈압을 재고, 갑자기 피를 뽑아가고, 수시로 태아심박 모니터링 장비를 배에 부착해야 하는 것은 상당한 불편이었다. 이래서야 불면과 스트레스 때문에 없던 병도 생기겠다며 짜증이 난 적도 많다. 약물 치료나 수술을 받는 고위험 산모는 족히 몇 배는 더한 고난을 겪었으리라.


그래도 입 밖으로 불평할 처지는 아니었다. 나는 고위험 산모 집중치료실이라는 일정한 공간 안에 머물렀지만, 나라는 산모 하나를 관리하기 위해 마련된 인프라는 그 몇 배 이상이다. 상태가 휙휙 바뀌는 임신의 특성상, 나의 상태를 관찰하기 위해 상주하는 의료 인력이 여럿이다. 고위험 산모가 분만하게 될 경우의 분만, 수술이 필요할 때의 수술도 이곳이 출발점이다. 만약 조산을 하게 된다면 신생아에게 즉시 신생아중환자실 치료가 필요하다. 고위험 임신에서 최악의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기민한 대응을 한다는 원칙은 어디까지나 산모와 태아를 위한 것이다. 사소한 것까지 통제당하고, 때로는 갇혔다는 생각마저 들지만, 내가 조기 진통을 느끼자마자 제 발로 찾아온 곳이 이곳이다.


나는 출산과 고위험 임신에 대한 수기를 종종 읽는다. 그녀들의 글 안에서 임신이 의료적 관리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한 반감도 쉽게 읽힌다. 한 명의 인간이 아니라 한 개의 자궁으로, 그저 태아를 위한 생체 인큐베이터로 환원되는 순간의 불쾌함. 과거에는 그런 감상을 접할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고위험 산모와 아기들을 위해서 산부인과 의사들이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인데, 왜 그것을 몰라줄까? 답답할 따름이었다. 이제는 양쪽의 입장이 다 이해가 간다. 집중화된 감시는 환자의 자유와, 의료진의 격무는 여유로운 설명과, 산과의 고위험 저소득 구조는 산모의 개인적 편익과 양립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균형점을 찾으려는 지혜로운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아마도 그중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은 사람 그 자체일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고위험임신을 둘러싼 인력 구조의 모순점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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