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가 현대 의학 승리의 이야기이다. 항생제와 수혈, 초음파와 제왕절개가 만들어낸 극적인 전환. 1%에 달하던 모성 사망률이 0.01% 이하로 떨어진 놀라운 성취. 버티고, 지켜보고, 결단하는 현대적 산과학의 전략과 기술. 하지만 이 서사에는 중대한 전제가 숨어있다. 이것은 부유하고, 의료 자원이 풍부하며, 정보 접근성이 보장된 환경에서만 가능한 낙관적인 이야기라는 점이다. 동전의 반대편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존재한다.
닿지 않는 의료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 세계에서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사망한 여성은 26만 명이다. 이마저도 과거와 비교하면 적은 값이라고 하겠으나, 평균값 뒤에는 극심한 불평등이 존재한다. 사망한 26만 명 중 절대 다수인 92%의 케이스가 저소득 국가에서 발생했다. 고소득 국가와 저소득 국가의 모성 사망비는 최소 30배 이상 차이 난다. 이는 전적으로 의료 자원 분배와 접근성의 문제다.
분배의 불평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시는 산후 출혈이다. 산후 출혈은 피가 워낙 많이 나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데다가 의료진의 재빠른 처치가 생명이다. 선진국에서라면 수혈과 약물, 색전술과 응급 수술로 대응이 가능하다. 정공법이 다 나와 있다는 의미다. 이런 산후 출혈이 아직도 전 세계 모성 사망의 27%를 차지한다. 최소한의 기술과 자원만 있다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죽음이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예멘 같은 분쟁 지역에서는 의료 시설 자체가 파괴되어 있다. 네팔 산간 지역에서는 병원까지 도보로 하루가 걸린다. 진통이 시작된 뒤 산을 넘다가 도중에 출산하거나 사망하는 일이 여전히 발생한다.
이런 격차는 비단 먼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전체적인 지표는 우수하나, 도시-농어촌 간 분만 시설의 접근성은 차이가 크다. 국내에서도 일부 외곽지의 모성 사망률은 서울의 2배이다. 절댓값으로는 여전히 낮은 수치이지만, 같은 나라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산모의 안전이 차등 보장되고 있다. 꼭 사망이라는 극단적인 결과가 아니더라도, 가까운 곳에서 분만 가능 시설이 없다면 최선의 치료를 받기 힘들다. 산과적 응급 질환은 짧은 시간 내에 인력과 설비가 갖춰진 병원에 도달 가능한지가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분만 취약지가 우리나라에 108곳에 달한다.
이미지 출처 = 연합뉴스, 자료=국립중앙의료원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격차도 존재한다. 결혼과 함께 이주한 여성은 내국인 산모보다 산전 진찰 비율이 유의미하게 낮다. 이유는 병원비 부담과 언어 장벽 때문이다. 10대 산모의 싱황도 좋지 않다. 청소년 임신은 그 자체만으로도 고위험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임신 사실을 숨기는 경향 탓에 산전 진찰 비율은 크게 떨어진다. 10대 산모의 2/3가 임신 중 적절한 관리를 받지 못했다는 보고가 있다. 자신이 임신을 했는지조차 모른 채, 생리를 거른다며 쭈뼛거리며 진료실에 들어오는 앳된 여학생을 나는 종종 만난다. 고학력 고소득 산모가 정보를 취득하고 고위험 징후를 파악하는 동안, 취약 계층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조차 알기 어렵다.
산과학이 이룬 성취는 분명 실재한다. 이제는 분만 진료를 하지 않는 나조차 그 자부심을 마음 한편에 간직하고 있을 정도로. 하지만 그 좋다는 현대 의학의 혜택은 절대로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문제는 의술 자체가 아니라, 의료를 둘러싼 경제적·정치적·지리적 장벽이다.
여전히 남은 불확실성
의료 접근성이 완벽히 보장된 환경에서도 임신과 출산은 여전히 예측과 통제가 어려운 영역이다. 과거보다 발전했다는 것이지, 의학의 다른 분야와 비교해 봐도 본질적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일단 대상이 관찰하기 어려운 곳에 있다. 태아는 몸속의 몸이다. 성인에게라면 직접 수행 가능한 진찰과 간단한 검사가 매우 까다롭다. 병원에서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피검사와 엑스레이 촬영만 해도 시도할 수가 없다. 만약 태아를 대상으로 개입을 시도한다고 해도 극히 조심스러워야 한다. 미약한 태아에게는 작은 영향조차 치명적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아기는 성인과 달리 빠르게 상태가 변한다. 오늘의 상태가 내일과 같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러다 보니 태아에 대한 정보는 많은 경우 추정적이거나, 잠정적이다. 초음파 검사는 대상의 그림자를 투영하는 기법인 만큼 오차가 있다. 태아 심박 모니터링은 위양성(실제로는 문제가 없는데, 검사 결과 문제가 있다고 해석될 여지)이라는 약점이 있다. 의료진이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다소 애매한 단서들의 조합에, 때때로 주관적 해석까지 더해져야 한다. 완벽한 정량화나 기술적 균질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무엇보다 임신의 경과는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측면이 있다. 나는 임신 19주에 자궁경부무력증을 진단받았다. 산모가 산부인과 의사인데도 미리 알지 못했냐고? 나라고 어찌 예상했을꼬! 아무런 위험 인자도 없었는데 저절로 일어난 일이다. 나는 그나마 수술을 받고 약을 먹으며 조산을 최대한 막는 것이 가능했지만, 더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불과 지난주까지는 멀쩡해 보였던 태아가 어느 날 갑자기 자궁 내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기도 한다. 아기 낳을 때가 아닌데도 태반이 떨어지거나 양수가 터지는 사건도 얼마든지 급작스레 일어날 수 있다. 어떤 종류의 고위험 임신은 미리 파악이 가능하지만, 때로는 예고 없이 날벼락처럼 찾아오기도 한다. 이처럼 임신과 출산의 여정에는 사전에 예방하지도, 정확히 예상할 수도 없는 함정들이 존재한다
물론 이런 비극은 드물다. 하지만 ‘드물다’는 통계적 사실은 그 비극을 경험한 당사자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미 나쁜 결과를 맞이한 이들에게 “현대 의학 덕분에 고위험 임신도 대체로 안전합니다”라는 말은 공허할 뿐이다. 여전히 아기 낳는 일은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복잡한 생물학적 과정이며, 까다로운 의학적 도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