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는 통시적 관점에서 고위험 임신의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겠다. 셈하기 편리하도록 딱 100년 전으로 가보자. 1925년에 아기를 낳은 한 젊은 여성은 출산 이틀째에 열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다음 날엔 숨이 가빠지며 차츰 의식이 몽롱해졌다. 사나흘이 지나자 그녀는 숨을 거두었다. 산욕열로 인한 사망이었다.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의술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이전, 불과 백여 년 전만 해도 대략 1%의 산모가 출산 관련 문제로 사망했다. 아기를 잃는 일은 물론 훨씬 더 흔했다. ‘고위험 임신’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지만 사실상 모든 임신은 고위험 임신이었고, 모든 분만은 고위험 분만이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이 탄생과 죽음이 나란히 놓이는 비극을 겪어야만 했다. 감염이 원인이 되는 산욕열뿐만 아니라 산후 출혈, 난산, 전자간증(임신중독증)도 여지없이 산모와 아기를 사지로 이끌었다. 대응할 방법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의학의 승리, 20세기의 혁신
20세기 초반 항생제의 등장, 수술 기법의 발달, 수혈과 각종 약물이 판도를 크게 바꾸었다. 위생 관리와 영양 상태의 전반적인 개선에 힘입어 모성 사망과 영아 사망이 극적으로 감소했다. 특히 항생제가 등장하며 감염성 질병에 손 쓸 방법은 생겼다는 점이 주효했다. 산욕열이 산모 사망의 무려 40%나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산 관련 사망 지표는 항생제 등장인 1930년대 이후로 가파르게 개선된다.
20세기 미국 통계. 좌측은 영아 사망이며 우측은 모성 사망 (이미지 출처 = CDC)
영아 사망이 개선된 것은 생활환경이 나아졌다는 것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과거보다 잘 먹이고, 위생적인 조건에서 살아가게 되면서 어린 아기들의 생존율이 점진적으로 향상되었다. 한편, 모성 사망은 앞서 등장한 의술의 혁신이 막강한 힘을 발휘한 분야다. 수혈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산모가 다량 출혈 때문에 죽는 경우를 상당 부분 막을 수 있었다. 마취 기술과 무균 수술법 덕분에 제왕절개도 안전하게 시행할 수 있게 되었다. 난산으로 아기가 나올 길이 꽉 막혀도, 또 다른 출구가 열린 것이다. (20세기 이전의 수술은 고문에 가까웠다. 궁금하다면 이 글로)
예측과 예방의 시대
죽음의 행렬을 상당 부분 극복한 20세기 중후반부터는 의학의 목표가 한층 확장되었다. 임신과 관련된 여러 합병증을 연구하면서, 위험에 대한 시야가 넓어졌다.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점도 한몫했다. 기존에는 뱃속에 있는 아기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 지극히 제한적이었다면, 태아의 상태도 상당 부분 파악이 가능해진 것이다. 초음파 검사, 태아 심박 모니터링, 임신 중 주기적 산전검사 프로토콜이 확립되었다.
1970년대부터 일상적으로 사용된 초음파 검사는 아기와 임신 상태에 대해 많은 정보를 주었다. 태아의 위치와 방향, 양수와 태반, 발달 정도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과거에는 분만이 진행 중인 와중에서야 태아가 역아(머리가 위를 향한 태아로, 난산이 예측된다.) 임을 알아낼 수 있었다면, 초음파 도입과 함께 이를 미리 알고 준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태아의 심박동을 측정하는 기술이 등장하면서, 실시간으로 아기 상태를 파악하고 위험도에 따라 분만 방법을 전환하는 결단을 알맞은 시점에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주기적 산전 진찰 덕분에 전자간증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였다면 산모가 경련을 일으키고 장기가 망가지는 단계에 가서나 알 수 있었던 질환이다.
현대의 고위험 임신
그래서 오늘날에는 고위험 임신의 양상과 대응 목표가 과거와 다르다. 예방적 항생제를 쓸 수 있으니 산욕열 같은 감염병은 더 이상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대신 효과적으로 고위험군을 가려내고, 집중적인 관리로 나쁜 결과를 최대한 예방한다. 단순히 죽지 않게끔 막는 것을 넘어선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수술과 각종 기법의 발전 덕분에 치료적 옵션도 다양해졌다. 거기에 아기를 돌보는 신생아의학의 발전이 고위험 분만 관리의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 신생아 집중 치료 덕분에 설령 아기가 조산으로 태어나도 상당한 확률로 생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역사 덕분에 우리는 최대한 안전한 시점까지 버틸 희망과, 위험 요소를 면밀히 지켜볼 수단과, 결단의 순간에 동원할 기법까지 갖추게 되었다.
반면에 현대의학을 총동원해도 모든 고위험군을 예측하거나 파훼할 수는 없다. 그래서 현시대의 모니터링 방법으로도 조기 예측이 불가능한 질환은 때때로 사망까지 야기하기도 한다. 양수색전증이 대표적이다. 이 치명적인 질환은 사망률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미리 알아내거나 예방할 수 없다. 또한 24주 미만의 조산은 살려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염색체 이상과 같은 기형은 발견은 가능할지언정, 뾰족한 수는 없다. 이렇듯 아직 기술적으로 난제인 영역도 여전히 있다. 의학의 발전은 계속되지만, 앞으로도 갈 길이 많이 남아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