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앞선 글을 통해 고위험 임신이 얼마나 다양하고 흔한지 알아보았다. 다음으로 고위험 임신의 흐름과 특징에 대해서 알아볼 차례다. 모체와 태아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는 상황이 고위험 임신이라면, 그로 인한 나쁜 결과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엄마 또는 태아/신생아의 사망, 장기간의 집중 치료를 요하는 중증 질환, 후유장애 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은 매우 마음 아픈 일이지만, 분만과 출산 과정에서 간혹 발생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극단적인 상황이 결코 흔치는 않다. 우리가 살펴본 통계 자료에서 고위험 임신이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은 것과 비교해 보면, 실제로 나쁜 결과를 맞이하는 것은 소수이다. 위험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많지만, 그래도 상당수는 큰 위험을 면한다. 이는 몇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덕분이다. 이들 요소의 속성으로부터 고위험 임신의 핵심 대응 전략이 다음과 같이 도출된다. 버티고, 지켜보고, 결단하는 것이다.
고위험 임신과 버팀의 미학
처음으로 살펴볼 것은 임신의 속성이다. 임신은 어디까지나 한시적인 일이다. 기다리면 언젠가는 끝난다. 임신이 만들어냈던 생리적 변화들이 출산과 함께 대체로 복구된다. 따라서, 시간이 지나면 모체에 가중되던 생물학적 부담이 해소되는 측면이 있다. 이를테면 전자간증(임신중독증)은 임신부에게 치명적이지만, 임신이 종결되면 질환을 유발한 병태생리가 자연스레 해소된다. 이런 종류의 고위험 임신에서는 산모의 상태가 위험 수위에 도달하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동시에 태아가 자궁 밖 세상에 나갈 준비를 마칠 때까지 ‘버티는 것’이 화두가 된다.
태아 자체의 특성도 작용한다. 뱃속의 아기에게 가장 중요한 생존 변수는 ‘주수’이다. 시간의 축복과 함께 태아는 차츰 생존력을 획득한다. 그래서 둘 다 조산으로 분류되어도, 임신 26주에 태어나는 아기와 34주에 태어나는 아기의 예후는 하늘과 땅 차이다. 어른에게 두 달은 다이어트를 하기에도 촉박하지만, 태아는 그 시간 동안 폐를 포함한 핵심 장기를 성숙시켜 놀라우리만큼 커다란 차이를 만든다. 스스로 호흡할 수 있도록 폐 성숙을 완성하고, 뇌신경계를 발달시키며, 감염에 저항할 면역력을 엄마로부터 전달받는다. 이런 경우에도 태아가 자궁 밖에서 살아갈 수 있는 시점까지 최대한 버티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데이터를 통한 리스크 관리
여기까지만 들으면, 단순히 기다리기만 하면 고위험 임신을 둘러싼 많은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절대로 그게 다가 아니다. 시간을 버는 것은 분명히 중요한 요소이지만, 반드시 의학적 감시와 개입이 가능하다는 전제가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 내가 강조하는 ‘버티기’에는 짝꿍처럼 ‘지켜보기’와 ‘결단하기’가 따라와야 한다.
분만 중에는 모니터링 장비를 통해 자궁 수축과 태아 상태에 대한 실시간 정보를 얻는다. (이미지 출처 = 본인)각종 검사와 장비로 데이터를 수집하는 현대 산과학의 ‘지켜보기’는, 위험의 징후를 남보다 한발 앞서 발견하기 위한 치열한 정보전과 같다.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보이지 않는 위험의 파도를 읽어내고,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임계점이 언제인지를 끊임없이 가늠하는 과정이다. ‘지켜보기’를 통해 시간을 벌고 데이터를 쌓았다면,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단계가 남는다. 바로 ‘결단하기’다.
예를 들어 자궁 내 환경이 좋지 못해서 태아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면,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오히려 이른 출산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초음파 검사로 태아의 상황과 성장 추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켜보는 것이다. 이렇게 면밀한 관찰로 획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차라리 아기를 빨리 꺼내서 자궁 밖에서 안정적으로 생존하게끔 의사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도 있다. 결단을 내린 것이다.
현대 산과학의 역할
지켜보고 결단하는 것은 결국 의료진의 몫이 가장 크다. 그래서 마치 스포츠 경기의 심판 같은 역할이 주어진다. 정상적인 시합 중이라면 심판은 되도록 경기의 흐름을 끊지 않으려고 한다. 예를 들어 축구 심판이라면 실수로 공을 차거나, 선수와 부딪히지 않기 위해 주의하게 마련이다. 심판이 존재하는 궁극적 목적은 경기가 공정하고 매끄럽게 끝나는 것이니까. 하지만 선을 넘는 순간에는 반드시 휘슬을 불어 시합을 중단시키고 카드를 꺼내야 한다. 그리고 언제 그러한 개입이 필요한지 파악하려면, 경기 상황을 끊임없이 매의 눈으로 주시하고 있어야 한다.
임신의 내재적 특성에 더불어, 현대 의학이 감시(지켜보기)와 개입(결단하기)의 역할을 수행하기에 우리는 고위험 임신을 꽤 준수하게 관리해내고 있다. 때로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일 분 단위로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 때로는 자궁 내 수술 같은 큰 결단을 내려야 한다. 혹시 내가 산부인과 의사라서 너무 팔이 안으로 굽는 것 같다면, 다른 근거도 얼마든지 제시할 수 있다. 의술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이전 시대에, 고위험 임신은 파멸적 결과를 가져오곤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