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저출산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잘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출생아가 줄어들고 있으니, 산과 의사들은 할 일이 적어졌을 것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전체 분만 건수가 아무라 줄어도, 분만실의 긴장도는 최고조이다. 물론 핵심 인력의 급감이 중요한 원인이지만, 산과 진료의 난도 역시 대폭 상승했다. 과거에는 소수이던 고위험 산모가 이제는 발에 채일만큼 흔하다. 통계가 명확하게 말해 준다. 우리는 전례 없는 속도로 고위험 임신, 고위험 출산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노산이 평균이 된 시대
출산 시점에 만 35세 이상이라면 고령 산모(노산)로 분류된다. 사실 ’35세’와 ‘고령’은 형용 모순으로 느껴진다. 사회적으로 35세는? 누가 봐도 청춘! 팔팔하게 한창 활동할 젊은이다. 하지만 적어도 임신에 있어서 노산은 엄연히 위험 부담이다. 염색체 이상, 임신중독증, 임신성 당뇨, 조산 등 각종 합병증의 위험도가 증가하기에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고령 산모에 대한 공격으로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도 노산모다. 노산에 대한 생각은 이 글을 참고.)
문제는 이 고령 산모의 비율이 매우 높고, 그 증가 폭도 OECD 평균을 훨씬 상회한다는 사실이다. 2024년 기준 고령 산모 비중은 41.3%이다. 2020년 32.1%에서 비율이 훌쩍 뛰었다. 순수 노산모 숫자로만 따지면 5년 만에 17.2%나 증가했다. 세계적인 추세와 비교해 봐도 독보적이다. 우리나라의 초산 연령은 OECD 평균보다 4세 많고, 대표적인 고령화 국가인 일본의 노산모 비율도 30% 정도로 우리보다는 양호하다. 한국 산모의 급격한 노령화는 출산을 둘러싼 인구 구조 자체가 변화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제 노산은 예외가 아닌 상수가 되었다.
다태아 출산율의 폭증
임신 연령이 높아지면 아무래도 난임 시술도 늘어난다. 난임 시술을 통해서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은 커다란 희망인 반면, 부작용도 따른다. 대표적인 것이 다태아 임신이다. 보조 생식술에 따른 임신은 자연 임신에 비해 다태아 임신 확률이 월등히 높다. 잠깐. 일부러 쌍둥이를 낳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은데, 쌍둥이가 부작용이라니?
다태 임신은 의학적으로 주의 깊은 관찰과 집중 지원이 필요한 고위험 임신이다. 원체 하나만 임신해도 돌발 변수가 많은 것이 임신이다. 다태아는 단태아보다 일찍 태어나기에 당연히 조산으로 인한 부담이 따른다. 임산부에게는 임신 합병증의 위험이 급증한다. 만약 태아가 둘이 아니라 셋, 넷이라면 위험의 수준도 폭등한다.
전체 출생아 중 다태아 비율은 2020년 1.7%에서 2023년 5.5%를 기록했다. 불과 몇 년 만에 3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이렇듯 한국의 다태아 출산은 추세적으로도 가파른 증가이지만, 세계적으로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다태아 출산율은 분만 1000건당 26.9건으로 그리스에 이어 세계 2위이며, 특히 세 쌍둥이 이상 고차 다태아 출산율은 세계 1위이다.
만연하는 고위험 임신
고위험 임신이 얼마나 흔해졌는지 알려주는 단적인 지표가 있다. 태아가 만삭을 채우지 못하고 태어나는 조산율의 악화가 그것이다. 한국의 조산아 비율은 2011년 6.0%에서 2021년 9.2%로 급증했다. 출생아 10명 중 1명 가까이가 미숙아로 태어난다는 충격적인 수치이다. 아기의 생존과 발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조산이 크게 늘었다는 점은 우리나라의 모자보건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임을 보여준다.
얼마 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해 고위험임신을 둘러싼 최신 통계가 발표되었다. 2020년 전체 분만 중 16.5%를 차지한 고위험 분만이 2024년 26.2%로 증가하였다. 신생아 4명 중 1명이 의료 개입이 필수적인 고위험 조건에서 태어난다는 뜻이다. 주변에서도 흔히 들어봤을 것이다. ‘임신 중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 대학 병원을 가야 한대.’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신생아중환자실에 들어가서 조리원에도 못 데려갔대.’
애석하게도 고위험 임신은 일부 소수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다. 고위험 임신 시대, 더 이상 미래의 일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