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 임신은 임신•출산 중 임신부나 태아, 신생아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임신으로 임신 중 또는 분만 과정에서 보다 세심한 관찰과 관리가 필요하다.
– 대한산부인과학회(2020)
고위험 임신의 정의만 놓고 보면 솔직히 하나도 감이 오지 않는다. 그저, “위험할 수도 있는 임신”이란 뜻의 동어 반복이니까. 고위험 임신에 해당하는 상황을 하나씩 살펴보면 어떨까? 하지만 2016년 대한산부인과학회가 발표한 고위험 임신 분류만 해도 무려… 95가지의 항목이 포함된다. 나는 이 95가지를 다 거론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우리는 고위험 임신에 대해 개괄적인 감만 잡으면 충분하다.
거칠게 나누어 보자면, 임신 전부터 존재하는 위험 인자와 임신 중 발생하는 위험 요소가 있다. 임신 전 고위험 요소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임신부의 나이이다. 2024년 기준 한국의 35세 이상 고령 산모의 비중은? 자그마치 41.3%라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가 있다. 일단 나도 여기에 해당된다. 노산이 대단히 흔한 일이기는 하지만, 엄밀하게는 고위험 요소다. 한편, 너무 어린 나이에 임신해도 고위험 임신이다. 뭐든지 적당해야 좋다. 지나친 비만도 고위험 요소이지만, 깡말라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지병도 이 분류에 해당한다. 임신 전부터 순환기계, 주요 장기 등에 건강 문제가 있다면 고위험 임신이다. 임신 자체가 가져오는 신체적 부담이 있기 때문에 기존의 질병 상태가 악화될 가능성이 높고, 임신 합병증과 연관될 수도 있다. 또한 과거의 임신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그것 역시 다음 임신을 고위험 임신으로 만든다. 아무래도 한 번 일어났던 나쁜 일은, 또 일어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다음은 임신 중 새롭게 발생하는 고위험 요소이다. 지병도 없고, 나이도 젊고, 체중이 적당해도 임신 자체가 스스로 수많은 변수를 만든다. 쌍둥이 임신이 여기에 해당한다. 쌍둥이 임신은 한방에 애 둘을 키워낼 수 있다는 가성비(?)까지 더해져 흔히들 선망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 역시 산모와 태아의 건강에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이유는 조기 진통과 같은 임신 합병증으로 이어질 가능성 때문이다.
임신 합병증에 해당하는 고위험 요소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산과 질환의 총합이나 다름없다. 조기 진통, 조기 양막 파수는 조산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당연히 신생아의 생명과 건강에 커다란 부담이 된다. 태아 기형, 임신성 당뇨도 임신 합병증이다. 임신중독증, 태반 박리 같은 무서운 상태라면 말 그대로 목숨이 경각에 달린다.
임신 전에 아무런 고위험 요소가 없었고, 임신 중 정기 산부인과 검진을 모두 통과했더라도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출산이다. 특별한 문제가 없었던 정상 임신도 분만 과정에서는 뜻하지 않게 위험한 일이 얼마든지 생긴다. 아기의 태위가 잘못되기도 하고, 출산 후 출혈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쯤 되니 고위험 임신을 피하는 것이 더 신기할 지경이다. 애기 낳는 것이 그렇게나 위험한 일이던가? 이거 원, 무서워서 애 낳겠나. 하지만 너무 걱정에 사로잡히지는 말자. 고위험 임신은 반드시 임신•출산의 결과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그러할 가능성이 보통보다 높아진다는 것이고, 알맞은 주의와 의료적 관리를 거쳐 무탈하게 아기를 만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실제로 그것이 고위험 임신 요소를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알리는 이유이다.
고위험 임신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안전 임신? 아니면 무위험 임신일까? 어차피 그런 것은 없다. 이 모든 것은 잠정적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니까. 임신과 출산은 산모와 태아의 상태가 급변하는, 대단히 역동적인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필연적으로 평소보다 조금씩은 위험하다. 그러니 고위험 임신의 반대말을 고안해 보자면, 저위험 임신이 될 것이다.
임신이 저위험이든, 중간 정도의 위험이든, 고위험이든 궁극적으로는 정도의 차이이다. 그것이 내가 ‘고위험 임신’을 주제로 글을 쓰는 이유이다. 고위험 임신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재생산에 수반되는 가변성을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이에 현명하게 대응하는 태도의 밑거름이 되리라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