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장래희망 : 흰머리 뽑는 사람

세상은 갈수록 각박해져서 큰 꿈을 갖는 일은 쉽사리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 다만 어린이는 이것에서 간단히 면제된다.일종의 ‘까방권’이다.그래서스파이더맨이 되겠다고, 노벨상을 받겠다고 하면 어른과 달리 칭찬과 격려를 받는다. 하지만 나는 원대한 이상을 품는 대신, 소박한 궁리를 하는 데에 이 귀한 시기를 모두 써버렸다.

고물 라디오 말고는 놀거리가 없어 심심하던 시절이었다. 맞벌이 부모님을 대신해서 나를 돌봐주던 할머니는 손주의 놀이와 효도, 용돈을 한꺼번에 해결할 묘수를 발견하셨다. 흰머리 한 가닥 뽑을 때마다 10원을 주겠노라며 나를 당신의 등 뒤에 앉혀두셨다. 그러면 내가 머리칼을 헤집는 사이 할머니는 마늘을 빻거나 콩을 깔 시간을 뚝딱 벌었다. 나는 보통 하루에 40원, 50원을 벌었지만 운 좋은 날엔 300원, 400원도 벌었다. 참고로 아동학대 아니다. 빠삐코가 150원 하던 시절이다. 그리고 흰머리 뽑기야말로 내가 번 돈으로 빠삐코를 사 먹을 수 있게 해 준 유일무이한 일이었다. 어떻게 이 은혜로운 천직을 배신할 수 있겠는가? 학교에서 장래희망 조사서를 나눠주면 친구들이 경찰, 대통령, 과학자를 적을 때 나는 그 작은 공란에 억지로’할머니 할아버지 흰머리 뽑아주는 사람’을 꾹꾹 욱여넣었다. 물론 흰머리 뽑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나중에라도 뭔가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차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경찰? 내가 도둑을 어떻게 잡겠어! 과학자? 똑똑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거 아냐? (절레절레) 역시 나는, 흰머리를 뽑아야 해.

나는 장기적 계획, 더 나은 미래, 원대한 이상과는 이렇게나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흰머리 발출가를 꿈꾼 지 20여 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후, 차기 과학 저술가를 선발하는 면접장에서도 심사의원의 질문에 이런 얼빠진 답변을 했다.

“아무개 씨는 앞으로 어떤 책을 쓰고 싶으십니까?”

“예? 제가요?… 그게, 하하, 제가 책을 쓸 만한 사람은 아니라서요.”

분위기는 급속히 냉랭해졌다. 과학 작가, 출판사 관련자, 과학 잡지 편집자 등으로 이뤄진 심사의원들은 이 대답을 듣고 나서 나에게 더 이상의 질문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보기 좋게 떨어졌다. 다시 생각해봐도 우습기 짝이 없다. 글 쓰고 싶다고자원해서면접까지 보러 가서… 고작 한다는 말이 저런 거였다.

나는 다음 해에 과학저술가 양성과정에 재도전했다. 꼭 저술가 과정을 통하지 않아도 어찌저찌쓸 수야 있겠지만, 아무래도 쓰는 경험이 전무한 이과 출신인 나에겐너무막막하게 느껴졌다. 교육에 참여하면 동료와 멘토가 생기니, 목표의식을 가지고 꾸준히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강연에서 쓰기로 과학커뮤니케이션 활동의 중심을 옮길 현실적인 이유도 생겼다. 당시 나는 임신 초기였기에, 여러 시간 운전해서 시골 학교를 찾아가는 일은 더 이상 쉽지 않았다. 곧 아기를 낳게 되면 시간을 조정해서 강연을 잡는 것도, 다른 과학 커뮤니케이터들과 협업을 하는 것도 녹록지 않게 될 것이 뻔했다. ‘하지만 글은 집에서 혼자서도 쓸 수 있잖아. 아기 태어나면 사람들과 일정을 맞추는 일은 하기 어려울 거야.’ (그때의 예상은 슬프게도 들어맞았다. 그렇다고 글쓰기는 쉽냐면 그것도 즈언혀 아니올시다. 지금도 아기가 낮잠을 자는 사이에 재빨리 타이핑을 하느라 마음이 바쁘다.)

전년도와 동일한 샘플 원고를 제출했지만, 이번에는 질문을 받기도 전에 먼저 어필했다. 또 떨어지면 자신감을 너무 잃을 것같아서 마음이 조급했다. 청소년기부터 이런저런 과학책을 탐독했습니다. 과학 작가 중에선 이런저런 분들을 좋아합니다. 최근에는 이런 책을 읽었고 감상은 이러하였습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이야기의 결은 이러합니다. 만약 쓴다면, 이런 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심사의원이 물었다.

“아무개 씨는 혹시 작년 면접에 지각하셨습니까?”

“지각이요? 아니요…”

“오호, 그런데 왜 떨어지셨을까요? 뭐, 아무래도 좋습니다. 올해는 저희랑 같이 해 보시죠.”

나는 기쁘게도 과학저술가 과정에 합류해서 동료 저술가 지망생들과 같이 글쓰기 공부를 하게 되었다. 사실 내 동기들 중엔 이미 훌륭한 분들이 많았다. 글쓰기 실력은 두말할 것도 없고, 이미 여러 차례 성공적으로 출판을 하신 분들마저 계셨으니 말이다. (놀랍게도 작가 지망생 중에 최정상 병원의 교수님, 연구원으로 활약하고 계신 분도 있었다!) 동경하던 하리하라(이은희) 작가님의 멘토링에 더하여, 정성스러운 밀착 첨삭까지 받게 되었다. 동료저술가의 조언에 힘입어 이렇게 브런치 연재도 시작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맺은 인연이 이어져과학 서평잡지에 칼럼을 기고하게 되었을 때는 나에게 할당된 지면이 어찌나 귀하게 느껴졌는지, 한두 시간마다 모유를 먹이는 극한의 신생아 돌보기 스케줄을 소화하는 틈틈이 원고지를 채우는 일마저 수고스럽지가 않았다. 나는 완성된 파일과 함께 이메일을 보냈다.

내가 탈락한 첫 번째 면접에서 했던 대답, 그러니까 “저는 책 쓸 만한 사람이 아니에요.”라는 대답이 비록 면접장에 어울리는 답변이 아니기는 하지만, 정말이지 투명한 나의 마음이기는 했다. 사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의과대학 교수도 아니고, 산부인과의 대가도 아니다.인성이나 실력, 살아온 궤적 어느 면에서 딱히 내세울만한 것이 없다. 이왕이면 책을 쓰는 일은 나보다 모범적이고 글을 잘 쓰는 분들이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쓴글이 진짜잡지가되어 내 손에 쥐어졌때는 마치 처음으로 내 아기를 안아들었을 때와 비슷한 황홀감이 느껴졌다. ‘단행본이면 얼마나 더 좋을까? 투고라도 해보고 싶다…’ 저절로 욕심이 생겼다.지금 당장 내 능력 밖이라고 해서 모든 가능성을 배제한다면, 나는 지금보다 나은 것은 하나도 할 수 없게 된다.평생 흰머리만 뽑고 싶어하는 열 살의 아이로 돌아가버린다.

나는 열한 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장래희망 조사서’에 그럴듯한 직업을 써넣었다. 그랬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최근이사를 준비하던 친정엄마가 보관하던 오래된학급문집에서 발견해서 보여주었다.<내 꿈은 작가입니다.> 피식 웃음이 났다. 까짓거, 내가 책 쓸만한 위인이 아니긴 하지! 하지만 미처 쓰지 못한 ‘까방권’이 있잖아. 늦게나마 갈음해서 좀 쓰겠다는데 어때. 나는 글을 완성하기로 마음먹었다. 아기가 뱃속에서 나와 내 품에 안겼듯이, 내 능력이 닿는 만큼은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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