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시작하기 전에 당부할 것이 있다. 제법 민망한 사례도 등장하는데, 결코 환자에게 창피주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료실은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곳인 만큼 기상천외한 일도 일어난다.’병원에서 이런 얘기까지 하는 사람, 나밖에 없겠지?’라는 고민을 덜어주기 위함이 목적이라는 점을 미리 밝힌다.
나는 앞선 글에서 산부인과 진료에 대한 마음의 벽을 지적했고, 문제 말하기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모든 난관을 뚫고 견우와 직녀처럼 우리가 만났다고 치자. 한 가지 더 실질적인 문제가 있다. ‘탈의’이다.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진찰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는 별로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환자가 속옷을 벗어야 한다. 그런데 이미 ‘산부인과 방문하기’라는 커다란 과업을 이뤄냈다고 치더라도, 막상 옷 갈아입기가 간단하지 않다. 진료를 보조해주는 간호사는 언제나 똑같이 친절한 어투로 똑같은 내용의 안내를 한다. <이 쪽에 마련된 탈의실 안에서 하의와 팬티 모두 벗어주세요. 그리고 진찰용 치마로 갈아입고 나오시면 됩니다.> 복잡하지 않은 설명이다. 하지만 막상 탈의실의 커튼이 걷힐 때면, 놀랄 만큼 다양한 차림새의 환자들을 만나곤 한다.
“애구구, 속옷을 벗어야 산부인과 진찰이 가능해요.” (가장 흔한 경우. 바지는 벗었지만 팬티를 벗지 않은 환자는 제법 많다.)
“환자분! 그… 윗도리까지는… 안 벗으셔도 돼요.” (상의와 하의 모두 홀딱 벗고 나오는 경우. 내심 당황스럽다.)
드물지만 이런 경우도 있다.“환자분! 속옷과 바지를 모두 벗어주셔야 진찰이 가능해요.”“알아요. 팬티 벗었어요. 그런데… 바지까지 벗어야 한다고요???” (이 분은 ‘팬티 벗는다’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바지 벗고 팬티 벗은 다음, 다시 바지만 입은 채로 내 앞에 나타났다.)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나는 이유는 아마도 병원처럼 ‘사적인 공간이 아닌 곳’에서 속옷까지 완전히 벗는 것이 대단히 낯설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병원은 엄숙하고, 경직된 분위기의 공간이다. 그리고 거기서 일하는 의사는 가운 깃을 빳빳하게 세우고 뭐라 뭐라 어려운 말을 해대면서 컴퓨터 모니터만 들여다보는 갑 중의 슈퍼 갑처럼 보인다. 의사 앞에서 이런 말 해도 되나? 이런 얘기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 에이, 그만두자. 이런 말까지 하면 날 뭘로 보겠어.
하지만 막상 산부인과 의사의 하루는 그리 고상하지 않다. 소매 어딘가에 피를 묻히거나 양수를 묻히거나 혹은 둘 다 묻힌 채로 땀 삐질대가며 몸 쓰는 일이다.어딘가에서 혹 덩어리를 끄집어내거나 아기를 받아내려고 용을 쓰지 않을 때조차 그렇게 우아한 이야기만 듣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남들의 가장 비밀스러운 유산 경험이나 불만족스러운 성생활에 대한 감상을 듣는다. 남편이 단체로 동남아 골프 여행 다녀온 뒤로 어딘가가 꺼림칙하단 이야기를 듣는다. 남자 친구가 여럿인데 도대체 이 중 누구 때문에 성병에 걸린 거냐며 분노하는 환자의 열변을 듣는다. (인기 없는 의사가 되겠지만,환자 본인이 남자 친구들에게 옮겼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시해준다.)성욕이 지나치게 왕성해서 고통스러우니 질을 꿰매 달라는 할머니도 있었고,남편과 성관계를 안 할 핑계를 찾고 있으니 자궁을 떼어달라는 주부도 있었다. (물론 모두 거절했다.) 질 안에 들어간 이물질을 꺼내 달라는 요청이야 흔한 편이니, <욕실에서 미끄러졌는데, 우연히 거기 있던 @@가, 하필이면 질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어요> 따위의 깜찍한 거짓말은 하지 않아도된다.이곳에선 정말로 숨기지 말고 말해도 좋다. 산부인과 의사는가장 내밀한 곳에 손을 집어넣고, 절대 봐선 안 될 곳마저들여다보는 사람이다.
산부인과 의사는 성병 감염, 인공임신중절(낙태) 이력, 성경험의 유무, 자위행위, 성적 지향처럼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사적인 주제로 환자와 대화를 하게 된다. 꽤나 개방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이런 이야기는 쉽게 꺼내기 어렵다. 하지만 의사가 종교 지도자나 도덕 선생은 아니기 때문에 환자의 됨됨이나 인성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따지지 않는다. 사실 하루에 수십 명을 만나면서 일일이 평가질을 할 시간도, 정신적 여유도 없다. 의사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에 특화된 사람들이 아니다. 대신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건강한 것과 병적인 것, 안전한 것과 위험한 것이다. 예를 들면 ‘반복적인 인공임신중절 이력’은 다른 질환과의 연관 가능성이 높아서 산부인과적으로 아주 중요한 사항인데, 환자 입장에서 솔직히 인정하기엔 달갑지 않은 일이다 보니 ‘낙태한 적 없다’며 거짓 진술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면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체면치레 때문에 결정적인 정보를 놓치는 셈이 되어버린다.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는 이상, 뭇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꾸며서 포장하는 것은 어느 정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진료실에 맞선이나 상견례 때문에 나와 마주 앉은 것도 아닌데, 고상함과 우아함은 잠시만 내려두도록 하자.
의사들이 열심히 써내려가는 의학 차트는 건조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그 어디에도 환자의 됨됨이나 옳고 그름을 평가하지 않는다. 그건 의사의 일이 아니다. 게다가 온 우주에서 오로지 당신만 갖고 있을 것만 같은 해괴망측한 고민을, 의사는 이미 다른 이들에게서 들어봤다. 그러니 나의 조언은 이렇다:살면서 변호사와 의사에게는, 이왕이면 솔직한 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