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생명체이다. 생명체는 외부 환경에 맞서서 스스로를 유지하는 성질을 지닌다. 우리의 몸은 외부로부터 양분 등을 공급받아서 끊임없이 인체의 내적 환경을 유지시킨다. 그래서 생명체의 핵심 성질 중 하나가 항상성이다. 우리의 체온, 심박, 혈압, 산소 농도 등등이 일정 부분 변화는 있을지언정 어느 정도 허용 범위 내에서 유지되어야 한다. 일정함을 유지해야 우리가 ‘살아 있다’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병원의 환자 중 누군가의 심박수 등이 급격히 변한다면 이 중요한 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이므로 의사들이 호출을 받고 어디론가 후다닥 달려가는 것이다. 그래서 생물 시간에 배우는 ‘피드백 과정’의 대부분은 음성 피드백이다.뭔가가 너무 과해지면, 다시 줄이는 비법이 작동한다. 너무 적어지면, 정상 범위로 복구한다.이렇게 일정한 생체 활동을 유지시키는 과정을 음성 피드백이라고 말한다. 인체가 항상성을 유지하는 원리이다.
그래서 음성 피드백과 반대되는 과정인 양성 피드백은 예외적이다. 과해지면 줄이고, 적어지면 늘리는 ‘적당함’ 추구가 모름지기 생명체의 미덕이다. 그런데 양성 피드백은 아니다.A가 B를 증가시킨다고 치면, B는 다시 A를 증가시킨다. 더 많아진 A는 곧이어 더더욱 많아진 B를 만든다.결과가 원인을 강화시켜서, 전에 없던 폭발력을 만든다.상식적으로 양성 피드백이 필요한 상황은음성 피드백이 필요한 상황에 비해 적을 것이다. 이를 테면 우리 몸의 체온이 엄청나게 높아져야 하는 상황이 있을까? 피가 끓는다는 말은 문학적 비유에서나 쓰는 말이다. 신체는 어제와 오늘이, 그리고 오늘과 내일이 비슷한 것이 가장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양성 피드백은 이러한 적당주의를 끝장내고, 극단적인 결과를 만든다. 그러니 양성 피드백은 아주 예외적인, 강력한 동력이 필요한 상황에서나 쓰임새가 있을 것이다. 슬슬 눈치챌 수 있겠지만, 임신-출산-육아는 바로 그 폭발적인 에너지가 필요한 순간이다.
출산에 관여하는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양성 피드백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옥시토신은 출산이 임박했을 때 자궁을 수축시켜 아기를 밀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아기가 나오는 과정이 간단하지는 않기 때문에(관련 글 읽기), 이 중요한 과제 앞에서 신체는 모든 동력을 쥐어짜야 한다. 그렇다.양성 피드백이 활약할 때이다. 옥시토신이 자궁을 수축시키면 그 자극으로 인해 더 많은 옥시토신이 분비된다. 더 많은 옥시토신은? 더 강하게 자궁을 수축시킨다. 그렇게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폭발력에 힘입어 커다란 머리를 가진 호모 사피엔스 신생아가 가까스로 산도를 통과한다. 아기가 탄생하면서 피드백 고리가 끊어질 때까지, 옥시토신은 엄청난 자궁수축력을 만들어내는 힘을 발휘한다.
옥시토신은 모유 수유에도 중요한 역할이 있는데, 젖 먹이는 과정도 양성 피드백으로 볼 수 있다. 더 많이, 더 자주 젖을 물리는 행위가 더 많은 프로락틴(유즙분비 호르몬)을 만든다. 아기가 젖꼭지를 빠는 행위가 양성 피드백으로 작용해서, 신경자극을 통해 프로락틴 분비를 촉진한다. ‘젖은 계속 물리다 보면 늘게 되어 있다.’는 산후조리원의 격언은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다. 출산 직후에는 겨우 한 두 방울 나올 듯 말 듯하던 초유가, 젖 물림이 반복되다 보면 점점 양이 늘어난다. 나중에는 하루에 많게는 1L까지 젖을 먹는 아기에게도 충분할 만큼 많아진다. 양성 피드백도 피드백 고리가 끊어지면 작동을 멈추게 되어 있으므로, 아기가 젖을 계속 먹지 않거나 물리지 않는다면 자연스레 단유가 되기도 한다.
일생 전체를 두고 보면, 분만과 수유 같은 일시적이고 급격한 상황이양성 피드백이 활약하는 무대이다. 통상의 상태에서는 자궁이 그렇게 강력하게 수축하지도, 귀중한 자원인 혈액을 원료로 모유를 펑펑 만들지도 않는다. 이렇듯 기존의 평탄한 경로에서 이탈하게 만드는 일들을, 바로 호르몬이 해낸다. 일련의 과정이 종결된다면, 다시금 임신 전의 상태로 돌아가야만 한다. 임신-출산-육아가 예외적일 만큼 에너지 소모적이라는 것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그 원인 중 한 가지는인간 아기의 미성숙함이 있다. 호모 사피엔스 신생아는 이케아 가구에 비유할 수 있다. 완성된 채로 태어나지 않는다. (태어나자마자 말하고 걷는다면 얼마나 편리할지 생각해보자. 6개월 아기를 키우고 있는 내가 겪는 지독한 손목 통증도 없을 텐데…) 집으로 가져와서, 직접 조립하고, 완성품으로 만드는 것은 오롯이 양육자의 몫이다.
물론 아기가 자궁 속에 있을 때는 자동으로 영양분이 공급 및 배출된다. 뱃속의 태아에게는 내 피에 있는 영양분을 태반을 통해 바로 전달해줄 수 있다. 그런데 아기가 자궁에서 나온 이상 이 모든 과정이 수동으로 전환되고, 중간 단계를 적어도 하나 이상 거쳐야 한다. 내 피를 걸러서 젖을 만들고, 그 젖을 아기가 용써가며 빨아먹고, 먹은 젖을 소화시키는 이중 삼중의 과정이 추가된다. 여러 단계의 유통망을 거친 제품이 소비자에게 도달할 때는, 원산지에 비해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지는 것과 비슷하다. 신생아는 마치 태아 상태일 때와 마찬가지로 맹렬히 성장하므로, 풍부한 에너지를 시도 때도 없이 공급해야 한다. 그렇게 빨리 자라는 생명을 직접 방식이 아닌 간접 방식으로 키우는 것은 아주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모유수유 산모가 칼로리 소모가 많아서 살이 쪽쪽 빠지는 이유이다.
젖 분비는 칼로리만 소모하는 것이 아니다. 모유 수유에 관련된 호르몬, 옥시토신과 프로락틴은 아기와 모체 상호 간 정서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나는 출산 후 몇 달간 모유 수유를 했다. 아마도 글에서 느껴지겠지만, 나는 과학 너드에 가까운 사람이며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헌신이 썩 어울리는 성격은 아니었다. 모유 수유가 장점이 있다고는 하니 시도해 볼 마음은 있었지만, 여의치 않거나 힘들면 바로 포기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어? 막상 아기를 낳아보니 젖이 많은 편이라 그만두자니 아까워서 계속하게 되었다. 하지만 젖몸살을 자주 앓아서 모유 먹이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오기로 버티다가 병원으로 복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 이제는 일도 해야 하니 모유 수유는 그만둬야겠다 싶어서 단유약을 처방받았다. 단유를 위한 유방관리도 알아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단지 단유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슬펐다. ‘내 아기가 내 젖을 안 먹는다고? 말도 안 돼…’ 정말이지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났다. 딱히 간절했던 모유수유도 아니었고 모유 먹이는 동안 고생을 워낙 많이 해서 특별히 더 행복하지도 않았다. 매일같이 지치고, 아프고, 힘들었다. 그런데 막상 젖을 뗀다는 지극히 평범한 일이 마치 견딜 수 없는 비극, 세계-자아의 격렬한 갈등, 비참한 핍박, 끝없는 고통처럼 느껴졌다. 감정이 지나치게 널뛰기를 하는 나머지, 아기 들으라고 틀어둔 동요 때문에 엉엉 울었다.
“토실토실♬ 아기 돼지~ 젖 달라고 꿀꿀꿀~”
이거 듣고 왜 우냐고?아기 돼지가 간절히 젖을 찾고 있지 않은가!이것이 나의 오열 포인트였다. 내가 젖 떼 버리면, 우리 아기도 저렇게 울겠지? 어흐흑.. 안 울기로 유명한 내가 질질 짜는 것을 보고 당황해하는 남편에게 말했다.
“이건 호르몬 때문이야! 나도, 나도 안다고… 그래도 어쩔 수가 없어.”
결국 몇 날 며칠을 울다가, 단유에 실패했다. 젖을 못 뗀 나는 직장을 다니면서 모유 수유를 계속했다. 출근하기 전에 재빨리 젖을 먹이고,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유축을 해서 냉장고에 보관했다. 퇴근길에는 보냉백에 담아서 모유를 가져오고, 퇴근하자마자 다시 젖을 물렸다. 어찌 보면 제법 무리한 일인 데다가, 아기가 분유도 가리지 않고 먹었고, 그 누구도 모유 수유를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렇게 열혈 수유부가 된 것은, 호르몬이 주는 보상 자극과 정서적 민감성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호르몬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사랑의 호르몬으로 알려진 옥시토신은 출산 시에 급격히 늘어나며, 어미에게 ‘돌봄 행동’을 하게 만든다. 새끼를 낳은 적이 없는 쥐에게도 옥시토신을 투여하면 모성 행동을 보인다. [1] 이러한 패턴이 사람에서도 비슷할 것으로 유추할 수 있으며, 실제로 아기와 엄마 간의 친화적, 유대를 쌓는 행동에 옥시토신이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2] 특히 새끼가 젖 빠는 행위가 모체에게 주는 쾌감이 너무나도 강력하기에, 수유하는 어미쥐들은 심지어 코카인보다도 젖 물릴 새끼를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결과를 보여준 동물 연구도 있다. [3] 수유 시에 크게 증가하는 프로락틴도 유사한 양육 촉진 반응을 보인다. 앞서 설명한 ‘미완성 새끼’를 낳는 동물들에게는 이러한 생물학적 설계가 필수적이다. 이케아 가구는 조립할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신경전달물질로 쓰인 조립 설명서는 나를 집요하게 독촉했다. 아기를 낳자, 나의 뇌는 배선을 뚝딱뚝딱 고치기 시작했다. 아기의 울음소리에 재빨리 반응하도록 우선순위를 조정했다. 아기를 끌어안고 젖을 먹이는 행위는 중독적일 정도였다. 아기에게 조금이라도 위협적인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나서야만 했다.
재미있는 것은, 아기를 낳지 않은 여성, 심지어 남성에게도 양육 행동으로 생리적인 변화가 생기며 프로락틴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4] 노파심에 덧붙여 말하자면,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인간의 돌봄과 애착 관계를 호르몬의 단순한 양적 관계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모유 수유를 하지 않는 산모도 충실한 모성 행동을 한다. 심지어 직접 새끼를 낳지 않거나, 자기 새끼가 아닐지라도 모성 행동의 잠재성은 모두에게 있다.
출산 후 나는 호르몬의 노예 같았다. 아기가 주는 기쁨도 컸다. 하지만 아기 울음소리에 신경이 온통 곤두서 있었으며, 아기에 관한 것이라면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게 굴었다. 이게 다 호르몬 때문이야! 우울해진 마음에 호르몬 탓을 하다가도, 젖 먹는 아기가 가져오는 보상 자극에 황홀해했다. 나는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음, 보상이 있으면 노예가 아니지. 게다가 호르몬의 주체도 나 자신이니, 오히려 노예가 아닌 주인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인체의내부에 이 고되고 힘든, 일견 불가능할 것만 같은 것들을 가능하게 해주는 섬세한 엔진과 강력한 동력이 있다.심신이 건강해야 한다는 대전제가 필요하긴 하지만, 이런 생물학적 필살기 하나쯤 있는 것도 제법 괜찮은 일이다. (감정 변화는 무척 힘들었지만, 원래 필살기 발동하면 반작용이 따르는 법이다.)
월경, 임신, 출산과 같은 일들을 겪을 때에 체내에서 호르몬의 변폭이 크게 나타내는 특징 때문에, 여성이 유난히 호르몬에 휘둘린다는 편견이 있다. <여자들은 호르몬 때문에 너무 감정적이다. 여자들은 호르몬 때문에 너무 변덕스럽다.> 물론 호르몬의 영향을 절대 무시할 수도 없고, 오르내림이 많은 삶이 주는 괴로움이 없다고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호르몬을 원망하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휘둘린다는 표현은 공정하지도 않다. 모든 것이 거울 같은 호수처럼 잔잔해서야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이 임신-출산-육아인 것을 어쩌나. 세상에는 격렬함으로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멋진 일들도 있다. 서핑하는 이들에게 파도는 절대적인 변수이지만, 아무도 서퍼가 파도에 휘둘린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파도를 탄다. 나는 오늘도 호르몬의 파도를 타고, 호르몬의 힘을 입는다.
<참고문헌>
마티 헤이즐턴. (2022). 호르몬 찬가. 사이언스북스.
세라 블래퍼 허디. (2021). 어머니 그리고 다른 사람들. 에이도스.
[1] Pedersen, C. A., Ascher, J. A., Monroe, Y. L., & Prange, A. J. (1982). Oxytocin Induces Maternal Behavior in Virgin Female Rats. Science, 216(4546), 648–650.
[2] Feldman, R., Weller, A., Zagoory-Sharon, O., & Levine, A. (2007). Evidence for a Neuroendocrinological Foundation of Human Affiliation: Plasma Oxytocin Levels Across Pregnancy and the Postpartum Period Predict Mother-Infant Bonding. Psychological Science, 18(11), 965–970.
[3]Ferris, C. F., Kulkarni, P., Sullivan, J. M., Jr, Harder, J. A., Messenger, T. L., & Febo, M. (2005). Pup suckling is more rewarding than cocaine: evidence from 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and three-dimensional computational analysis.The Journal of neuroscience : the official journal of the Society for Neuroscience,25(1), 149–156.
[4]Gettler, L.T., McDade, T.W., Feranil, A.B. and Kuzawa, C.W. (2012), Prolactin, fatherhood, and reproductive behavior in human males. Am. J. Phys. Anthropol., 148: 362-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