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악마도, 신도 디테일에

전공의 시절 일이다. 손가락이 여섯 개인 태아 기형으로 상담을 받으러 온 부부가 있었다. 당시는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던지라 많은 기형아 케이스를 보게 되었다. 그중에는 간혹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곧 죽을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기형도, 평생 후유증이 남는 무서운 장애도, 되돌릴 방법이 전무한 유전적 문제도 있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그런 중증 경우에 비교하면야 이 아기의 육손가락(다지증) 상담은 상대적으로 마음이 약간은 덜 무거웠다. 의학적 관점에서 치료가 비교적 용이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아기는 나중에 잉여 손가락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으면 남들과 마찬가지로 다섯 손가락을 가진 채로 살아갈 것이며, 수술 이후에 손에 생기는 후유증도 대체로 없다.

이 다지증 태아의 부모인 무거운 얼굴의 부부 한 쌍이 진료실에 들어왔다. 담당 교수님은 신중히 태아 초음파를 검토한 후, 다행히 육손가락 말고 다른 기형이 없어 보인다는 소견을 설명했다. 일단 무사히 출산하는 것에 집중하고 나중에 아기가 어느 정도 성장하기를 기다렸다가, 기형 손가락 절제술을 시행하면 된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 부부는 이미 여러 병원에서 상담을 했는데, 가는 병원마다 아기 낳고 수술하자는 이야기가 못마땅했던 모양이었다. 설명을 들은 아기 아빠가 먼저 입을 뗐다.

“그러면 안 되죠.”

뭐가 안된다는 거지? 나는 갸웃했다. 아기 아빠가 한 번 더 힘주어 말했다.

“태어나고 나서는 안 돼요. 지금, 뱃속에 있을 때 고치는 방법은 없습니까.”

당시 전공의였던 나는 진료 보조 역할이었기 때문에 발언권이 없었지만, 반사적으로 말도 안 된다고 대꾸할 뻔했다. 생존에 영향이 없는 데다가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에 안전하게 수술하면 되는 질환을, 굳이 위험천만하게 태아 상태에서 수술하겠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행히 교수님도 나랑 생각이 같은 것 같았다.

“음, 그렇지만 임신 중에 다지증을 고칠 수는 없어요. 게다가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 태어나고 나서 안전하게 교정하는 방법이 있는걸요.”

하지만 아기의 아빠는 동의하지 못했다. 심지어 격앙된 상태로 외쳤다.

“그러면, 제가 그걸 봐야 하잖아요!”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나를 포함한 진료실 안의 사람들이 동요했다.

“제 자식이 손가락 여섯 개인 것을, 저보고 보라는 말씀이잖아요!”

나는 속으로 예비아빠가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병이 있어도, 남들과 모습이 조금 달라도 자식인데. 심지어 충분히 수술할 수 있는 질환이다. 그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며, 뱃속에 있을 때 고쳐내라니… 아기 아빠의 고함은 충격이었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내가 지금도 기억할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아기를 키우는 지금은 그 심정을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동의하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그 부부는 손가락이 여섯 개인 모습이 흉해서 보기 싫다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직접 본다는 것은 기형을 인정한다는 것인데, 그것이 너무나 마음 아파서 회피하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아기의 문제라면, 작건 크건 간에 수용하기가 참 힘들다. 다른 아기가 아니고, 내 아기인데.

우리 아기는 출생 시점에는 심장기형은 없어진 것으로 판명되어서(작은 결손은 저절로 막히는 경우도 흔하다.) 한숨 돌렸지만, 태어난 이후로도 몇 가지 문제들이 더 발견되었다. 음낭에 물이 차는 음낭수종이 점점 커져서 검사를 했고, 수술 여부를 두고 경과 관찰 중이다. 가슴이 안쪽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흉곽 기형이 있는데, 이것 역시 나중에 수술로 고쳐야 할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호흡이나 심기능이 양호하니 기능적으로는 충분히 건강한 아기라고 할 수 있지만, 의학적으로 엄격하게 말하자면 내 아기는 여전히 ‘기형아’이다. 기형이나 장애는 눈이 세 개 달려 있거나 장기가 없는 중증 이상만을 말하지 않는다. 모든 태아의 2-3%가 선천성 기형이 있다. 생각보다 이렇게나 흔한 일이니, 그 정도의 차이와 다양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얼마 전 이런 제목의 인터넷 게시글을 본 적이 있다. 제목이 내용의 전부일 정도로 짧은 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댓글이 달렸는데, 대부분 아이를 지우겠다는 댓글이었다. 일부는 오히려 심장 기형아를 낳는 것이 이기적인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초음파 검사에서 지속적으로 심장 이상 소견이 보인 아기를 단 한 번도 지울 생각을 안 해본 내가 이 글을 읽자니, 뒷맛이 영 씁쓸했다.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첨언하자면, 나는 지금 이 글에서 임신중절 찬반의 관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13주 이후의 인공임신중절에 매우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무조건적인 임신중절 반대자가 아니라는 뜻이다.)다만 타인 – 이 경우에는 태아 – 의 생사와 같은 지극히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에는 과학적으로 가능한 모든 근거와 상황을 고려하는, 엄밀하고 성의를 다한 판단을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기가 심장 기형이면, 차라리 빨리 지워버리는 게 나아요’라는 댓글을 단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 경시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극단적인 사람들이 그렇게 흔할 리가 없거니와, 아마도 태어날 아기의 불행과 부모의 커다란 짐을 더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나름의 실리적 판단에서 나온 의견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견해의 상당 부분은 근거가 너무 빈약하다. 피고인에게 사형을 언도하는 판사는, 어떤 태도로 증거를 검토해야 하겠는가?

모든 병에는 경중이 있고 예후가 다르다. 태어나자마자 거의 확실하게 죽음을 맞이할 아기일지라도, 열 달을 뱃속에서 품고 낳아 그 아기에게 이 세상을 단 하루라도 보여주는 부모들이 있다. 상대적으로 경미하고 치료가 가능한 질환만으로도, 크게 낙담하고 아기를 포기하고 싶어 하는 부모들도 있다. 막상 아기를 낳고 키워보니, 사람의 사정이 제각기이니만큼 어느 쪽도 함부로 비난할 수 없다고 느낀다.하지만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자세한 이해조차 없이 아기의 생사를 결정하거나, 그 결정에 말을 보태는 것은 무책임하다.아기는 몇 주가 된 시점인가? 심장 이상의 정도는 어느 수준인가? 동반된 선천적 장애나, 후유증이 예상되는 상황인가? 치료와 재활을 꾀할 수 있는 종류의 질환인가? 부모의 여건은 앞으로의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가? 게시물을 올린 사람도, 댓글을 달아둔 사람들도 중요한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그저 두루뭉술하게 심장 이상이 있는 아기라는 것 만으로 무조건 낳거나, 낳지 말라는 결정을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심장 기형의 종류는 엄청나게 많고, 그 중등도와 예후도 천차만별이다. 그러니질문도, 대답도 형식이 크게 잘못되어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 태아에게 도저히 생존을 도모하기 어려울 정도의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고 해도 낳을 수 있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확신이나 자신은 없다. 하지만 아기가 심장 이상이 보였을 때, 위의 모든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았다. 내 아기의 심장 상태는 상대적으로 경한 편이고, 염색체 이상과 같은 영구적 장애는 가능성이 매우 낮았으며, 자연적으로 치유될 확률이 충분한 상태일 뿐만 아니라, 혹시 심장수술이 필요하다고 해도 우리 가족이 감당 가능한 범위 안에 있었다. 그런 이유로 인공임신중절은 아예 선택지에 없었고, 생각해 본 적조차 없다. 그렇게 낳은 아기는 서툴게 기어가기를 연습하는 중이라 지금도 빵실한 엉덩이를 연신 들썩이고 있고, 손아귀의 힘이 세져서 품에 안고 있으면 얼마 남지 않은 내 머리카락을 죄다 쥐어 뽑는다. (나의 탈모를 포함해서) 걱정거리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닐지라도, 여느 평범한 아기들처럼 자라고 있다.

자동차 사고가 났다고 치자. 피해자와 가해자의 과실비율은 몇 대 몇일까? 이것만 듣고서는,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것이 정상이다. 천하의 한문철도 최소한 블랙박스는 봐야 잘잘못을 따져줄 수 있다. 그런데 태아의 기형, 선천적 장애처럼 듣기에 두려운 말들도, 세세하게 알아보고 맥락을 파 해쳐 보면 막연한 상상과 다른 경우도 많다. 진단은 하나의 수면일 뿐이다. 그 밑으로는 디테일의 심연이 있다. 짧은 글, 요약된 정보, MBTI와 같은 범주화 도구를 가지고 재빠른 판단을 내리고 사안을 치워버리는 것에 익숙한 우리들은 상세히 알아보려는 지적 노력에 인색한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문제일수록 세부 내용이 중요하다. 악마도 신도 디테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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