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잘난 척하더니, 내 그럴 줄 알았다 (1)

“산모님, 그쪽이 아니고 이쪽이세요. 산모님 자리는요.”

이크크크! 나는 무심코 진료실 책상 건너편으로 건너가려다가, 간호사의 제지를 받고 뻘쭘하게 돌아섰다.

‘아 맞다. 나 의사로 온 거 아니지…’

그럴 만도 했던 것이, 항상 내 자리는 진료하는 의사 쪽이었지 환자 쪽이었던 적이 없었다. 내가 전공의 때 바로 이 방에서, 바로 저 모니터 뒤에서 일했는걸. 너무 창피하고 무안해서 뭔가 변명을 하려다가 그만두고, 얌전히 남편 옆에 앉아서 이제 곧 진료실로 들어올 교수님을 기다렸다.

“오, 어서 와. 소식은 미리 들었어. 임신 축하해! ”

지난 스승의 날 이후로 오래간만에 뵙는 교수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고위험’ ‘기형아’ ‘임신 합병증’ 진단명을 줄줄이 달고 대형 3차 병원을 찾는 수많은 산모들 사이에, 모든 칸이 ‘정상’이라고 메꿔진 기록지를 가진 내가 빼꼼 끼어있었다. 진료 보조를 맡은 후배 전공의도 웃으며 인사를 했지만, 나는 데스크 건너편의 이 자리와 역할이 못내 낯설었다. 평소에 안 지을 법 한 어색하고 불편한 표정을 자꾸 지었는데,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얼굴을 들키지 않아 다행이었다.

“알다시피, 별 문제없으면 출산 즈음에 다시 와도 되고. 혹시 남편 분, 궁금한 건 없나요?”

평소에 아기에 관련해 궁금한 것을 나에게 죄다 즉각 물어보는 남편은 딱히 궁금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진료는 금방 끝났다. 내가 대학 병원을 방문한 이유는 친근한 사람들이 있고, 익숙한 장소에서 출산을 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기형아 검사를 포함해서 지금까지는 모든 검사가 다 정상이었으므로, 굳이 이렇게 큰 병원을 자주 방문해야 할 이유는 사실 없었다. 그러니 중간중간 필요한 산전관리는 나의 근무지에서 챙기고, 정밀 초음파만 괜찮다면 출산 예정일 즈음에 다시 교수님 진료를 보기로 했다.정밀 초음파만 괜찮다면.이게 복선이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얼마 후 정밀 초음파를 보는 날 나는 약간 신이 나서 들떠 있었다. 오래간만에 예전 동료들을 만날 생각에, 친정으로 아기 낳으러 온 아낙네 같은 여유가 생겼다. 다들 고생이 많다며 도넛 한 박스를 건네자 반가운 얼굴들이 환하게 웃으며 임신을 축하해왔다. 내가 하루 종일 눈이 빠져라 초음파를 들여다보던 어두컴컴한 검사실도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 살가운 안부인사를 나누며 기계 앞에 자리 잡은 후배 의사가 분주히 내 배 위에서 초음파 탐지자를 놀리다가, 어느 한 지점에 손을 멈추며 내 눈치를 살폈다.

“선생님 보시다시피 여기… 애기가 일단 VSD(심실중격 결손)처럼 보이기는 하거든요.”

발름발름 뛰어대는 작은 태아의 심장. 그 심장을 이루는 구조물인 심실 벽에, 작지만 휑한 구멍이 보였다.

“네? 그게 무슨…”

무슨 소리지요? 까지 말할 뻔했지만, 스스로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너무나 한심하게 들려서 가까스로 말을 다시 삼켰다.

심장은 좌심실, 우심실, 좌심방, 우심방 네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우심실과 좌심실을 나누는 판막 사이에 결함이 있는 상태를 심실중격 결손이라고 한다. 태아에서 발견되는 가장 흔한 선천성 심장기형 중 하나이다. 누워있는 내가 모니터로 보기에도 심실 판막 사이에 뚫린 공간이 보였다. 심장을 둘러싼 막 주변으로 물도 차 있었다. 심낭막 삼출액이었다. 기형의 중등도를 따져보자면 아주 위급하진 않았지만, 하여튼 여느 산모들처럼 <정밀초음파 정상 땅땅> 판정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와 함께 우리 아기 검사 결과지에 여러 가지 진단명들이 주르르 나열되기 시작했다.

나는 어버버 대며 방금 들은 말을 앵무새처럼, 또다시 물어봤다.

“아니, VSD면, effusion(삼출액)도 있는데… 어쩌지요? ”

그런 병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사람 마냥 얼이 빠졌다. 말하는 와중에도 스스로가 모자라 보였다. 어떡하냐니 뭘 어떡해. 나도 전문의인데, 세상에 이렇게 무식한 소리가 있나. 하지만 내 아기가 아프다는 것 이외에, 다른 지식과 경험은 머릿속에서 모두 휘발되어버렸다. 후배 의사는 내가 받은 충격을 염려하면서도, 굳이 너무 자세히 설명하자니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이 들릴까 봐 조심히 단어를 고르는 듯이 보였다.

“이게 임신 중에 저절로 막히는 경우도 많고, 시간 간격을 두고 지켜보면 또 정상으로 보이기도 해요. 그… 아시겠지만 초음파 검사가 한계가 있어서요. 나중에 다시 봐야 할 것 같아요.”

“아 네… 그래요, 그렇지요.”

여전히 얼떨떨한 채로 남편과 초음파 검사실을 나왔다. 손바닥처럼 훤히 아는 병원이, 속속들이 익숙한 이 공간이 순식간에 무시무시할 정도로 낯설어졌다. 외래 환자를 호출하는 기계음과 적당히 바쁜 듯한 의료진의 발소리는 여전한데, 나 혼자 그 공간에서 튕겨져 나갔다. 이제 나의 역할은 의사가 아니었다. 선후배 의사들은 식구가 아니었고, 이곳은 친정집도 아니었다.나와 아기는, 환자였다.아무도 환자와 의사 사이에 경계선을 그어준 적이 없는데, 왜 나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을까. 어째서 그렇게도 오만했을까.

다만 감상에 빠져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남편이 나보다 더 크게 동요하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 아기가 심장 기형… 왜 이렇게 된 거지? ”

넋을 잃고 혼자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핸드폰으로 ‘태아 심장에 좋은 음식’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내가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어휴, 그만둬.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틀렸다! 놀랍게도 그런 주장을 하는 블로그 글이 있었다. 돼지 염통을 먹으면 아기 심장에도 좋다나 뭐라나. 나에게 당장 이것부터 먹어야 된다고 하는 남편을 진정시키느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지체되었다.

“초음파 봐준 선생님이, 잘못 본 거일 수도 있잖아. 그지?”

남편은 돌아가면서 원망할 사람을 찾았다. 지난번에 교수님이 봐줬으면 미리 알 수도 있었을 텐데. 아니지, 그 선생님은 왜 우리 건강한 아기를 아픈 아기라고 하는 거야? 괜히 그런 얘기를 해가지고 걱정하게 만들고. 휴.. 내가 아기 갖기 전에 과음을 몇 번 한 게 문제가 된 거야.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지만 아마 나도 원망했을 것이다. 급기야 그는 우리에게 왜 이런 불운이 상긴 것인지 대략 스무 가지의 가설을 세웠다. 만약 검증만 가능했다면 시도도 했을 것이다. 임신 중에 콜라를 많이 마셔서일까? 그러고 보니 태교를 열심히 안 했어. 혹시, 교회를 안 다녀서일지도 몰라. 자기 임신 중에 병원 근무가 너무 힘들어서, 스트레스가 많았잖아. 그래서 이렇게 된 거야. 우리가 아가 태명을 튼튼이로 지을걸 그랬나 봐. 지금이라도 튼튼이라고 부르자.

이쯤 되면 남편을 위해 변명을 좀 해야 할 것 같다. 그는 나보다 환자를 더 많이 보는 의사이고, 나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한 사람이다. 사실은 남편도 너무나 잘 안다. 선천성 기형은 조금 더 일찍 안다고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콜라나 태명은 아기의 구조적 이상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모를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도 무척 힘들어했다. 속상한 마음을 투사할 대상을 찾고 싶을 정도로. 다른 이의 아기가 아니고, 우리의 소중한 아기였기 때문이다. 나는 아기가 기형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대신 심각한 정도는 아니라는 사실로 그를 달래야만 했다. 아니 그런데, 나는 누가 위로해주지? 나도 당사자라고! 혼란 속에서 가라앉으려는 자아를 둘로 쪼갰다. 걱정이 많은 초보 예비맘에게서, 짧은 경력이나마 약간의 지식을 갖춘 산부인과 전문의를 조심스럽게 건져냈다.누구의 잘못도 아니다.진료실에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을, 나 자신에게 들려줄 때가 되었다. 우리의 잘못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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