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내 안의 포유류 암컷과 화해하기

최초의 ‘시험관 아기’로 유명한 루이스 브라운(Louise Joy Brown,1978~)조차 사실 시험관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시험관도 아닌, 배지에서 수정이 되었다. 수정을 포함한 극초기 과정을 제외한 나머지 아홉 달은 어머니의 몸을 빌어 다른 아기들처럼 자랐고, 다른 아기들처럼 자궁에서 태어났다.

아직 이 방법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탄생한 사람이 없으며, 설령 훗날 인공자궁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정자와 난자의 제공은 여전히 생체의 몫이다. 우리가 아무리 고차원적인 철학을 하고 탈물질적인 존재로 거듭난다고 해도, 인간의 본질은 여전히 피와 살이다. 인류의 유구한 역사에서 불의 발견, 농경의 시작, 2세 출산 중 어느 것이 가장 먼저 시작되었겠는가? 임신-출산-육아로 이어지는재생산의 지엄한 원시성 앞에서는,4차 산업혁명조차별 힘을 못 쓴다.

임신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분만 병원에서 근무 중이었다. 아기 밴 채로 아기 받는 일하는 것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었다. 사실 근무가 문제가 아니라, 출퇴근부터 난관이었다. 불러오는 배에 가쁜 호흡으로 평범한 오르막길은 안나푸르나 트래킹이나 마찬가지였고, 계단이라도 마주치면 나에겐 수직 암벽등반이나 다름없었다. 자동차로 출퇴근을 하고 싶었지만 좁은 주차장에서는 배불뚝이 임부가 내리고 타는 것만으로도 배로 고생스럽고, 행여나 사고가 날까 봐 운전하는 것도 적지 않은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임신 전처럼 여전히 지하철로 출퇴근했는데, 편도 70분 거리의 직장까지 가는 길에 임산부 전용 좌석은 비어 있는 날도 있지만 아닌 날도 있었다. 가끔은 어지러워서 자리에 주저앉아야 했고, 입덧 때문에 여러 번 헛구역질을 하곤 했다.

그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어떤특별한 증상 때문에 나의 직업 유지와 인간적 존엄이 위협받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임신 초기부터 잦은 방귀가 슬슬 시동이 걸리더니, 곧 부인할 수 없는 방귀대장이 되었다.밥 먹고 난 다음이면 나의 방귀 세례에주변이 은은한냄새로 진동하곤 했다.속으로는 불만이 많았을지 몰라도,남편은 군말 없이 적응했다.창피하거나 미안하지는 않았다. 내가 워낙 무드가 없는 사람이기도 하거니와, 생리적으로 어쩔 수 없는 현상인걸 어쩌겠는가?임신을 하면 소화 기능이 느려지고 커다란 자궁이 방광과 위장을 압박한다. 뱃속 공간은 탄력적으로 늘어나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한정되어 있다. 기체는 압력이 높은 곳에서 압력이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에, 가스가 방귀와 트림의 형태로 몸 밖으로 비집고 새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나는 당당히 이렇게 주장하며,오히려남편도 임신의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며 꼭 일부러 옆에 가서 방귀를 뀌었다. (물론 이럴 필요까지는 없다…) 그런데 집이 아닌 직장에서, 그러니까 내가 일하는 좁고 환기가 잘 안 되는 진료실에서까지 환자와 병원 직원들이 모두 이 생체 화생방을 견뎌야 한다는 건, 나의 사회적 위신을 심히 손상시키는 일이었다!

‘이래서야 만삭까지 일 할 수 있을까? 방귀 뀌어대는 의사를 환자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번듯한 전문의가 되어서, 명패가 번쩍이는 진료실에서, 잘 다려진 흰 가운을 입은멀끔한 나의 모습을 기대하곤 했다. (상상 속의) 프로답고 멋진 나 자신! 하지만 임신과 함께 마주한 현실은 그저 냄새 때문에 쩔쩔매는방귀대장 뿡뿡이었다. 고역을 치른 환자들과 직원들에게, 늦게나마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

곧이어 아기를 낳고 시작된 모유 수유는 포유류 암컷의 숙명을 확인하는 고된 작업이었다. 솔직히 나의 경우에는 아기 낳는 것보다, 젖 먹이는 것이 더 힘들었다. 사실 모유 수유의 알고리즘은 매우 단순하다. 아기 배고픈가? 젖 먹인다. 아기 또 배고픈가? 젖 또 먹인다. 복잡해서 힘든 게 아니다. 그저 무한에 가까운 체력과 인내심이 필요할 따름이다. 수유부의 뇌하수체에서는 프로락틴이라는 호르몬이 나오는데, 유즙 분비를 관할한다.임신 기간 중에 이 호르몬의 영향으로 유선이 발달하여 유륜과 유방이 커진다. 처음 경험한다면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젖먹이 동물들은 원래 이런 변화를 겪는다.모유에는 신묘한 자동 조절 기능이 있어서 젖을 자주, 많이 먹이면 그에 맞춰서 더 많이 생성된다. 물론 모유 분비도 사람마다 다르다. 태생적으로 유즙 분비가 적은 사람도 있고, 지나치게 많은 사람도 있다. 모유가 많을수록 젖 먹이기 유리할 것만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생성된 젖을 수유나 유축으로 짜내지 않으면 정체되어 울혈이나 염증이 쉽게 생긴다. 게임으로 치면 일종의 타임어택이다. 일정 시간 내에 해결해야 하는 미션의 연속이다. 나는 모유 과다에 해당되는 산모였기에 한밤중에도 3-4시간마다 무조건 일어나 젖을 비워야 했고, 단 한 번이라도 시기를 놓치면 지독한 젖몸살에 시달렸다. 엄마 없는 심청이가 젖동냥으로 컸다는 이야기가 순식간에 이해가 갔다. 나 같은 아낙들이 젖을 나눠주었던 것이다!

아기를 낳은 지 한 달이 넘었을 무렵, 야심 차게 첫 외출을 감행했다. 끝없는 젖 먹임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한계에 가까웠고, 집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고 종일 신생아를 돌보는 일은 심신을 지치게 했다. 쇼핑이… 쇼핑이 하고 싶었다! 비장하게 외출 채비를 하며, 남편에게 단단히 으름장을 놨다.

“내 오늘 백화점에서 가산을 전부 탕진하고 올 터이니, 그런 줄 아시오.”

똥방귀도 곧잘 참는 유순한 남편은, 알아서 아기를 돌보고 있을 테니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오라고 했다. 하지만 나의 야심 찬 계획은 내 안의 포유류 암컷이 나를 야멸차게 배반하며 어그러졌다. 아직 본격적으로 백화점 구경을 시작하지도 못했는데 유방이 땡땡 붓는 느낌이 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수유패드(모유가 흘러 옷이 젖지 않기 위해, 패드를 브래지어 안쪽에 붙인다.)가 젖기 시작했다. 야속한 프로락틴은 그 짧고 귀한 여가시간마저 기다려주지 않았다. 째깍째깍, 이제 유방은 두 개의 시한폭탄처럼 느껴졌다. 절대 해체하거나, 떼어낼 수조차 없는! 차가운 도시 여자인 나는 몇 달만에 나온 바깥세상 구경이 고팠지만, 동시에 포유류 암컷이기도 한 덕분에 아기의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고 쉼 없이 젖을 먹여야만 했다. 결국 아무것도 못 산 채 억울함을 삼키면서 조급하게 집으로, 젖을 빨 아기가 있는 나의 동굴로 돌아왔다. 아아- 젖도 울고, 나도 울었다.

이런 류의 경험들은 대개 임신부에게 좌절감을 안겨준다. 앞에서 묘사한 방귀와 수유는 빙산의 일각이다. 자존감이 바사삭 부서지고, 이전까지의 여성성을 상실한 것만 같은 상황은 끊이지 않고 반복된다. 몸매도 영 예전 같지 않고, 피부결은 색소 침착에 여기저기 튼살 자국이 가득하다. 호르몬 변화는 외형뿐만 아니라 정서에도 영향을 미친다. 배는 마치 곧 발사될 것처럼 한없이 튀어나오고, 몸에서 그나마 잘록했던 ‘허리’라는 해부학적 경계선이 아예 사라져 버린 것에 대해 울적함도 느꼈다. 그런데 한편으로, 임신-출산-육아는 본디 이런 식의 사건이다. 개인의 삶 내부에서 어느 날 갑자기 인류사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일이다. 도시에서 온갖 첨단기술의 혜택을 누리며 우아하게 생활하던 문명인 신여성이, 한 순간에 젖이 불고 새끼를 밴 짐승이 되는 일이다. 새 생명의 기쁨과는 별개로, 당연히 급격한 변화가 달갑지 않을 수있다. 나도 그랬으니 말이다.게다가 자기 관리와 외모의 기준이 말도 안 되게 높아진 오늘날 사회에서 여성들이 아무런 저항감 없이 신체적, 정서적 격변을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현대인에게 이러한재생산의원시성은 참으로괴이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출산은 일종의 특이점이다. 출산의 전장에선, 문명사회의 고매한 규칙이 웬만해선 먹혀들지 않는다. 기한, 납기,매너, 체면, 예의 등등. 가장 정숙하고 조신한 여인마저 남편 머리채를 쥐고 쌍욕을 내뱉는 곳이 분만장이다.공정함과도 거리가 멀다. 임신이더 간절하다고 해서, 아기가 먼저 찾아오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들에겐 수월했던 출산이, 또 다른 이들에겐 난임, 유산, 조산 등의 이유로 엄청난 스트레스이자 트라우마가 되기도 한다.

임신을 테이크아웃 커피라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영업하는 카페에 가서, 일정한 금액을 내고, 예상 가능한 맛의 커피 한 잔을, 먼저 온 순서대로 받아온다. 그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문명사회의 규칙이다. 하지만 삼신할매의 카페는 영업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고, 언제 열고 닫는지 알 수가 없어 방문할 때마다 허탕 치기 일쑤다. 어떤 사람한테는 공짜로도 기꺼이 커피를 내어주지만 어떤 사람은 억울하게도 수백만 원이나 내야 하고, 심지어 몇몇은 제아무리 노력해도 커피를 못 가져간다. 주문을 하려고 도착한 순서대로 줄 서는 것은 소용도 없다. 때로는 나보다 한참 늦게 온 사람이 먼저 커피를 받아간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달라고 아무리 목놓아 외쳐봐도 주인장이 콧방귀도 안 뀐다. 그냥 아무거나 주는 대로 먹으란다. 스타*스 커스텀 오더에 익숙한 젊은 층에겐, 도저히 납득 불가능한 영업 방침이다!

이러한 무작위성, 예측 불가능성, 통제 불능성은 사실 현대인의 취향에 그리 잘 부합하지 않는다. 다만어느 정도는우회할 방법이 있다.피임으로 임신을 미루는 것은적어도 임신 시기에 있어서 일정 부분은 주도권을 갖는 방법이다. 만약질식분만이 아닌선택적제왕절개술로 분만한다면,수술 예약을 잡으면서 아기가 언제 태어날지 정도는 예상할 수 있다. 정확한 수유량 측정이 가능하고 수급이 일정하다는 측면에서는,분유도 모유에 대응하는 일종의 우회이다. 산전 검사와 초음파는 아기가 태어나기 이전에 부모에게 미리 정보를 준다.이런 방법들은 의학적 측면을 차치하더라도, 각종 사회적 필요에 부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다만 나의 개인적인 의견은 이렇다. 적어도 재생산 과정에 있어서는, 웬만해선 뜻대로 되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도 괜찮다.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은 이해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의사이면서, 과학 커뮤니케이터이기도 한 내가 하는 이야기 치고 너무 안일하게 들릴 수도 있다. 더 많이 예측하고, 더 잘 통제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지 않을까? 하지만 과학에는 또 다른 미덕이 있는데, 그것은 미지를 인정하는 것이다. 다음 장에서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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