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임신, 이 정도일 줄은 나도 몰랐지

내가 산과 진료를 보면서 가장 많이 말하는 대사는 이런 것이다.임신의 경험이 있는 독자는, 의사가 정확히 이렇게 말하는 것을 분명히 들어보았을 것이다.

실제로 임신은 일시적 변화에 가까우므로, 상당수의 임신 관련 증상들은 가역적이다. 일방통행이 아니고, 되돌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임신으로 인해 생긴 불편감은 적극적으로 해결할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경우가 많다. 뱃속에 아기가 있는 상태에서 침습적 치료(‘침습’이란 의학용어가 등장한 다른 글)는 쉽지 않고, 약물을 쓰는 데에도 제한이 많아서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다수의 증상은 아기를 낳고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회복될 수 있다. (물론 사안마다 다르므로, 개별 증상은 병원에서 상담하도록 하자.) 나도 이 점을 잘 알다 보니, 임신 중 어지간한 불편감은 내색을 안 했다. 사실은 앓는 소리를 하고 싶어도 차마 못했다. 아파도 참으라고, 기다리면 해결된다고 남들에게 수없이 말해온 커다란 업보다… 아니, 그래도 말이야! 이 정도일 줄을 몰랐지!산모님들, 이걸 참았어?

임신한 신체는 종합적인 리모델링을 한다. 자궁만 뿅 커지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혈액의 양, 심박출부터 시작해서 식도 역류, 입덧, 호르몬의 영향, 관절 통증, 소화장애, 빈뇨와 같은 장기의 압박증상, 변비, 튼살을 비롯한 피부 변화, 졸림과 피로, 면역력 저하, 숨차는 증상, 뭐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앞에 나열한 것들은 의학적으로아무런 이상이 없는 정상 임신 이어도기본적으로 수반되는 것들이다. 이렇게 불편함의 종류가 많다 보니, 그중 어느 것이 나에게 당첨될지,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할지는 임신 전에는 알 수 없다. 이를 테면 살이 쪽쪽 빠질 만큼 지독한 입덧을 겪는 사람도 있고, 의외로 수월하게 임신 기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첫째 임신 때엔 양호했던 증상이, 둘째 임신에선 다를 수도 있다. 내 경우에는 식욕이 자제가 안 되는 ‘먹덧(먹는 입덧)’과, 임신기간 내내 나를 괴롭힌 허리 통증이 고역이었다.

‘먹덧’에 당첨되면, 공복 상태를 견딜 수가 없다. 위가 비는 순간 지독히 메스껍기 때문이다. 평소에 야식을 별로 즐기지 않는 내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라면을 먹었다. 조금 지나면 배가 꺼지고 다시 먹덧이 시작되기 때문에 하룻밤 사이에 라면 2번도먹었다. 당연히 살이 엄청나게 빨리 쪘다.이때 먹은 라면들이 아랫배에 야무지게 자리 잡은 덕분에 아기 낳은 지금도, 아기 언제 나오냐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저.. 아기…. 낳았답니다.. ^^) 영 못 먹는 것이 전형적인 입덧일 것 같지만, 실상은 고작 입덧 하나도 사람마다 양상이 다양하다.

모든 증상을 통틀어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관절통이었다. 임신 중에는 릴랙신 호르몬의 영향으로 관절이 다소간 느슨해진다. 수월한 출산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체중도 불어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관절 통증은 흔한 증상이다. 다만 나는 운 없게도 골반 관절이 심하게 아픈 케이스였다. 임신 극 초기부터, 아기 낳고 3-4개월 정도가 흐를 때까지 골반 관절의 통증 때문에 몸을 잘 움직이지 못했다. 허리와 골반이 연결되는부위가 말 그대로 뽀개질 것 같았다. 천장을 보고 누운 상태에서 몸을 뒤집거나, 몸을 일으킬 때마다 커다란 난관에 부딪혔다. 임신 후 자궁이 커지면서 방광을 누르기 때문에 자다가 소변이 자주 마려운데, 관절이 삐걱대는 통에 몸을 돌리지 못하다 보니 침대에서 도저히 혼자 일어날 수가 없었다.

“으악! 남편!!! 일어나 봐. 제발 나 좀 일으켜줘… ”

곤히 자는 남편에게 매번 일으켜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혼자 끙끙대다가 오줌보가 터질 때쯤에 엉엉 울며 억지로 몸을 일으키곤 했다. 임신 중기가 되자 나의 체중이 관절에 실리는 것이 통증을 악화시켜서 ‘서서 바지 입기’가 불가능해졌다. 한쪽 다리로 서서 나머지 다리를 바지에 넣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고작 옷 입기가 이렇게 고난도였다니! 나는 병원 일을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매일 출근해서 수술복으로 갈아입어야 했는데, 모든 탈의실마다 몸을 기댈 의자가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니 이런 사소한 일상생활까지 고역이 되었다. 임신 말기가 되자 똑바로 누울 수도 없었고, 다리를 들거나 몸을 뒤집으려고 움직일 때마다 악!악!비명이 절로 나왔다.에이, 엄살 아니냐고? 서러운 증거가 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출산 당일, 유도분만 중인 나는 자궁수축제를 맞으며 끙끙 진통을 하고 있었다.무통주사를 맞으려면 새우등 자세로 몸을 돌려야 하는데, 움직일 때마다 극심해지는 골반 통증 때문에 도저히 몸을 뒤집을 엄두가 안 나서 자궁문이 절반이나열릴 때까지무통주사 없이진통을고스란히견뎠다…진통의 고통이야 누군들 모르겠는가. 그런데 관절통이 진통보다 심할 줄이야. (물론 특이 케이스이다.) 출산 직후에도 몸은 좀처럼 빨리 회복되지 않아서, 바로 눕는 것은 산후조리원에서도 여전히 힘들었다. 그런데 애를 낳으니 이게 웬걸. 초면인 친구, 치질이 까꿍 생기는 바람에 도넛 방석을 깔아도 아파서 앉을 수가 없었다. 앉지도 못하고 눕지도 못하던 나는 낑낑대며 엎드려봤는데, 젖이 돌기 시작한 가슴이 짓눌려서 이번엔 젖몸살 때문에 죽을 것만 같았다. 아아- 원통하도다. 시지프스의 형벌이 따로 없다.

이렇듯 임신 중에도, 회복 기간 동안에도 온갖 통증 때문에 상당히 괴로워했고 몹시 우울하기도 했다. 나의 의학 지식에 비추어 보면, 이런 증상들은 아기를 낳고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회복되기를 기대해야만 한다. 그런데 막상 겪을 때에는 제법 강력하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도저히 저절로 사그라들 것처럼 느껴지지가 않는다. 나도 몹시 초조했다.’평생 이렇게 아프면 어쩌지?’나는 눕지 못하고, 앉지 못하고, 엎드리지 못하는 저주에 휘말린 채로 여생을 보내는 끔찍한 상상마저 해봤다. 하지만다행인 것은,인체에는 회복력이 있다는 점이다. 임신과 함께 커다란 신체 변화가 수반되었던 것처럼, 임신의 종결과 함께 다시 한 번 신체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물론 피부의 탄력이나 체형처럼 돌이키기 어려운 변화도 있고, 모든 임신 증상이 출산 후에 말끔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몇 가지 사실들은 분명한 위로가 된다. 오늘도 힘들어하고 있을 동료 임산부들을 위해 적어두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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