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어디가 얼굴이야?”
“에이, 아직 임신 5주밖에 안 되었는 걸. 여기 찍힌 회색 점이 배아야.”
“어디? 잘 안 보이는데…”
남편은 내 말이 못 미더운 듯 한 장의 흑백사진을 이리저리 훑었다. 아마도 내가 평소처럼 고약한 장난을 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지난주 내가 두 줄이 선명히 나타난 임신 테스트기를 그 앞에서 흔들어 보였을 때에도 이렇게 의구심 가득한 반응이었다. 병원에서 산모 진료할 때 쓴 임신 테스트기를, 집까지 가져와서 자기를 놀리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다른 남편들은 아내의 임신 소식을 들으면 놀라고, 감동하고, 어떤 경우엔 눈물까지 보인다던데!
아직 전문의 경력이 짧은 의사인 나로서는, 임신을 몸소 경험하는 것이 진료에 도움이 되었다. 내향적인 데다가 과학적인 것, 합리적인 것을 선호하는 나는 임산부를 보는 의사 치고 너무 ‘덤덤한’ 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임신을 계획하면서부터 막연하게 한 가지 기대를 품게 되었다.
‘내가 직접 임신을 경험하면, 산모를 더 잘 이해하게 되겠지.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아질 거고.’
그 덕에 몇몇 임신 초기 증상들이 슬슬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는데도, 마냥 짜증나지만은 않았다. 입덧이 뱃멀미와 비슷한 느낌이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고, 소변이 자주 마려운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도 알게 되었다. 이것은 더 나중 일이긴 하지만, 배가 봉긋하게 솟아오르기 시작하자 나에게 진료를 받는 임산부들이 무척 좋아했다. “어머나! 선생님도 임신하셨네요! 호호호~” 내가 그들과 같은 처지라는 것을 발견한 산모들은 적극적으로 반가움을 표현했다. 어쩐지 임산부 진료에 자신감이 붙었다. 동질감에 힘입어 진료 중에 큰 의미 없는 맞장구도 꽤나 오래 얹게 되었다. 그 사이에도 환자들은 임신을 하고 싶다며, 혹은 한 것 같다며 찾아왔다.
한 산모는 임신 8주 차인데 아기 심장박동이 안보였다. 분명히 지난주엔 보였던 태아의 심장박동이 거짓말같이 사라져 버리자 가슴이 철렁했다. 나는 초기 유산이라는 좋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야만 했다. 삽시간에 눈물바다가 된 산모와 남편에게 입을 열었다.
“사실 초기 유산은 제법 흔한 일이에요. 대부분 발달 과정에서 염색체 문제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산모분이 잘못한 건 전혀 없어요. 머지않아 다음 임신이 잘 되어서 찾아오는 분들이 대부분인걸요.”
산모가 쉰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얼마나 흔한데요? ”
“10 ~20%, 그러니까 열 명중한두 명이 경험하는 일이에요. 주변에 잘 알리지 않기 때문에 흔하다는 걸 알기 어려운 것뿐입니다.”
순간, 내가 하는 말이 음향이 되어서 다시 내 귀로 들어왔다.‘초기 유산은 흔하다.’이때 나는 임신 6주였고, 아직 아기 심장 뛰는 것을 보지 못한 상태였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섣불리 유산을 걱정하기보다는, 조금만 더 기다려 보면 될 일이다. 하지만 덜컥 겁이 났고, 갑자기 비이성적인 초조함이 밀려들었다. 그러고 보니, 내 아기는 잘 크고 있는 건가?
병원 접수가 마감할 때쯤 옆 진료실의 문을 두드렸다.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여자 산부인과 선생님이 반갑게 문을 열었다. J 선생님은 경력이 나보다 훨씬 길고, 아직 아이가 없는 분이었다. 마음을 편하게 해 줘서 산모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나의 임신 사실을 알리면서 조심스레 초음파 검사를 부탁했다.
“아이고 세상에, 임신 축하해요. 어디 한 번 볼까요? ”
초음파 기계가 내 뱃속에서 깜박이는 작은 점을 금세 찾아냈다.
“지금 5mm니까 6주 크기에요. 심장박동 뛰는 거 보이죠? ”
“선생님, 애기 심박 보여서 다행이에요. 사실 방금 제 환자 한 분 초기 유산 진단을 하고 나니 갑자기 겁이 나서 찾아왔어요…”
스스로의 호들갑스러운 걱정이 전문가답지 않다고 생각해서 마지막엔 목소리가 약간 기어들어갔다. 하지만 J 선생님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이 연신 초음파 기계의 버튼을 누르며 말을 이었다.
“지금 심장 잘 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보다, 임신 초기인데 병원일 하기 힘들죠? 속도 안 좋고 울렁거리기 시작할 텐데, 괜찮아요? ”
나는 환자의 마음 절반과 동료의 마음 절반을 가지고 조심스레 물어봤다. 평소 같으면 행여나 선배 의사에게 무례한 이야기가 될 까봐 하지 않았을 텐데, 그 순간에는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선생님께선 산모 마음을 너무 잘 아시네요! 혹시, 자녀가 없으신데, 어떻게 그렇게 이해를 잘하시나요? ”
아기집이 제일 잘 찍힌 사진을 골라 출력해 건네주면서, J 선생님은 마치 재미난 농담을 들었다는 듯이 깔깔 웃었다.
“에이~ 임신 그거꼭 해봐야 아나!사람 마음이 다 똑같죠. 선생님도 산부인과 의사지만, 자기가 임신하면 느낌이 다르잖아요. 처음 겪는 일인데 당연히 걱정도 될 거고. 누구나 비슷해요.”
나는 그 희끄무레한 점이 찍힌 사진을 들고 되뇌었다. 어쩐지 부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아 그렇죠. 사람이, 사람 마음이란 게, 똑같죠.”
아래의 사진에 보이는 희미한 점은 지구이다. 1990년, 태양계 바깥을 향해 날아가던 보이저 1호는 카메라를 끄기 전 외부 우주를 향하던 방향을 180도 돌려서 60억 킬로미터 떨어진 고향, 지구의 사진을 찍는다. 칼 세이건의 설득으로 찍게 된 이 사진은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제목으로 지금도 회자된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지구는 그저 한 개의 점일 뿐이다. 그 모습에는 이 점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는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있다. 아직은 배아에 불과한 내 아기의 초음파 사진을 쥐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그 사진과 칼 세이건의 시가 생각났다.
내 손 안의 한 장 짜리 초음파 사진은 기념비적인 촬영도, 천문학적 사건도 아니었지만 괜스레 어딘가 비슷해 보였다. 이 사진 속의 창백한 회색 점이 그대이고, 나이고, 우리 모두이다. 모든 사람이 한 때는 불과 몇 센티미터의 물주머니를 우주로 삼고 부유하는 먼지였다.창백한 푸른 점 위에서 태어난 자들이 피부색과 계급, 빈부와 성별과 상관없이 그토록 같은 모습이었던 적이 있다.
그러니 사람의 마음이 본질적으로 비슷하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줄까? 나는 임신이라는 개인적 경험이, 의사로서 산모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리라고 기대했다. 물론 이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하지만 J 선생님과의 대화 이후엔,단편적인 공감대를 넘어서는 더 높은 차원의 이해심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경험했으니 그것으로서 충분히 이해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오만에 불과하다. 사람에겐보편적인 것이 여전히 더 많기에, 모든 것을 겪지 않아도 타자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릴 수 있다. (마지막 장에서, 이 특별한 능력의 근원을 살펴보려고 한다.)
그 보편적인 부분 중 제일은 탄생이지 않을까 싶다. 임신과 출산을 통한 탄생. 이 과정을 건너뛴 사람은 아직 없을 것이다. 멀리서 바라본 지구가 하나의 창백한 푸른 점인 것처럼, 수태의 시점에서 바라보면 인간도 다 그렇게 희끄무레한 점으로 보인다. 저 작은 점을 보라. 그대이고, 나이고, 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