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진료는 성형외과 진료만큼이나 자연스러움에 대한 요청이 많다. 하지만”쌍꺼풀 자연스럽게 해 주세요”가성형외과에서의 대화라면, 산부인과의 환자들의 자연스러움에 대한 갈구는 아래와 같은 대화로 드러난다.
이렇듯 환자들의 자연 사랑이 지극해질 때면 나도자연히의문이 떠오른다. 자연스러운 쌍꺼풀 수술은 환영받는데 자연스러운 산부인과 수술은 왜 안되지? 복강경 수술, 감쪽같이자연스럽게해 드릴 수 있는데… 하지만 쌍수의 자연스러움과 산부인과의 자연스러움은 직관적으로 어딘가 다르다. 우리는 오래된 편견과 불분명한 언어, 난처한 수치심을 극복하고 이제는 그 정체가 불분명한 ‘자연’을 만났다. 자, 성벽을 넘었으니 이제 밀림을 건널 차례이다.
나는 산부인과 진료라는 특수한 맥락에서 ‘자연스러움’이란,환자가 의학적 개입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하는 것이라고이해하고 있다. 유의어로는”생약/한약만 먹을 거예요.” “자연 치유를 기다릴래요.” 등이 있다.
의학은 과학적잣대를 들이밀어 관찰, 해석하고예측하여 더 나은 방향으로 통제하는 것에서 의의를 찾는다. 하지만 개입을 거부하는 시각에서 보자면 그것이 꼭 최선은 아니다.여성의 몸은 오묘하고 비밀스럽다. 그 자체로 온전한 신체를 과학의 환원주의적 시각으로 해체하면본래적의미가 손상된다. 그러니 최대한 원래대로보전하고,이왕이면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이리저리 들쑤시는 의료야말로, 오히려 파괴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런 관념이 형성된 것에는, 과거 19세기 근대의학의 태동기에 일부 의사들이 불완전한 지식만을 토대로 과격하고 과도한 의료행위를 남발한 탓도 있다. [1])
다행히도, 대부분의 환자들은 저렇게 설명하면 잘 납득하고 치료에 협조해준다. 그리고 심각하게 위험하지 않다는 가정 하에서 환자가 본인의 치료 방침에 대해서의견을 내거나, 여러 가지 가능한 옵션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은 충분히 바람직하다. 하지만 드물게 너무 극단적인 자연주의를 주창하는 환자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불경한 의심이스멀스멀피어오를 때가 있다.
‘스마트폰 쓰시고 도시에서 생활하시는 데다가 올해 허리디스크, 백내장 수술도 받으셨다는 분이, 내가 처방해드리는 약만큼은부자연스럽다며 저렇게까지 싫어하시는 이유가 뭘까? 이 분은 이 약이 정말로 꼭 필요한데 도저히 설득이 안 돼! ‘
나의 개인적 의구심의출발점은 이것이다. 몇몇 환자가 개입을 거절하는 주된 이유는 개입의 대상이 ‘여자 몸’이기 때문이다. 산부인과에서 개입하려고 하는 대상(자궁, 난소, 여성호르몬 등등)은 여성성을 담당하기 때문에, 팔꿈치나 콧구멍과 달리 그 위상을 각별하게 취급한다. 마치 공포 영화에서 신비로운 영물을 건드린 주인공 일행이 끝없는 저주에 시달리는 것이 연상된달까? 다른 곳은 몰라도여성성만큼은 함부로 해석하거나 접근할 수 없는 신성함이 있다는 관념, 그 결과가 산부인과 의료에 대한 거부가 아닐까?여성의 생식기관은 그 정체성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으며, 동시에 원본을 훼손하면 안 된다는 것으로 신비주의의 필요충족조건을 만족시킨다. 그러니 이런 경우, 자연주의라기보다는 일종의 신비주의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물론여성의 신체가 소중하지 않거나, 신비롭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올해 아기를 낳은 나는, 그것만으로도 인생에서 가장 경이로운 경험을 했다. 심지어 의학이 여성 생식기관의 모든 작동 원리를 속속들이 밝혀낸 것도 아니다. 인공 자궁이 아직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신비함은 완벽함과 동일어가 아니다.여체는 성전에 모셔두고 예배를 바칠 대상이 아니고 나와 함께 내 인생의 모든 순간을 살아갈 나의 일부이다.때때로 삐걱대면 제대로 고쳐서 오래오래 함께 가야 한다. 놀랍게도 여성성에 대한 과도한 신성화는 과거여성 신체를 비하하는 잘못된 문화와정확히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치료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사람은고통을 피하고, 위험은 줄이려고 한다. 장수를 기원하고 안온함을 바라는 것은 본능이며, 그러려고 만든 게 의학이다. 내가 보기엔참으로 자연스러운 욕망이자 결과물이다.합성 호르몬 약이 부자연스럽냐고? 부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약이 필요한 질병은, 그보다 더 부자연스러운 상태이다. 난임시술이 부자연스럽냐고? 부자연스럽다. 하지만 2세를 간절히 갖고 싶어 하는 욕망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출산을 병원에서 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가? 시각에 따라서는 동굴 속에서 풀섶 깔고 아기 낳는 것이야말로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어떤 입장에선 안전하고 편리한 환경을 확보하고 아기를 낳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엔트로피는 불규칙함의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이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닫힌 계에서 언제나 증가한다. 그러니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이야말로 우주적으로 가장 ‘자연스러운’일이다. 내버려 두면 엔트로피가 항상 커지므로, 자연계에서는 모든 것이 무질서해지며 평탄해진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면 세상에서 생명체만큼 부자연스러운 것이 없다. 생명체는 에너지를 공급받아 물질대사를 하면서 스스로의 내적 규칙성을 유지하므로, 생명체의 엔트로피는 감소한다. 생명들은 살려고 발버둥치는 과정에서 저마다의부자연스러운질서정연함을 뽐낸다. 이렇듯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인간도 그렇다. 아주 자연스럽기도, 가장 부자연스럽기도 하다.
때로는 과학적으로 해석하지않고 신비를 그저 신비로만 남겨두는 것이 나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을 때 뿐이다.산부인과학의 ‘부자연스러운’ 개입은 매분 매 초마다 생명을 구하고 고통을 줄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나에게 이것은, 참 자연스러운 일이다.
<참고 문헌>
[1]리디아 강, 네이트 페더슨『돌팔이 의학의 역사』,더봄(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