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큰 차이가 벌어지는지 간략히 부연하겠다. 실제로 이런 치명적인 오해를 경계했던 대학 교수님은, 환자가 NIPT의 정확성에 대해 질문할 때마다 짧고 간편한 숫자로 답변하는 대신, 늘 ‘촘촘한 체’로 비유하곤 했다. 나는 이 비유에 정말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마구잡이로 섞여있는 보리와 쌀을 구별하기 위해 체를 쳐야 한다면, 이왕이면 체의 망 크기는 딱 적당한 것이 좋을 것이다. 평균적인 쌀알보다는 조금 크고, 평균적인 보리알보다는 약간 작으면 대부분의 보리알은 체 위에 남고, 대부분의 쌀알은 아래로 걸러질 테니 우리는 쌀과 보리를 효과적으로 분리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모든 쌀알과 모든 보리알의 크기가 균일하지는 않다 보니 하필이면 유난히 큰 쌀알과 유난히 작은 보리알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체 위에도 큼직한 몇몇 쌀알은 보리와 섞여 있고, 체 아래에도 유난히 작은 보리알은 쌀과 섞여 있을 수 있다. 어쨌든 대략적인 체치기(선별검사)가 끝났으니, 대부분은 자기 자리를 찾아 분리되었다. 아직도 섞여있는 소수의 보리와 쌀을 솎아내는 것은 확진검사의 영역이 된다.
그런데 만약, 쌀의 양은 무려 백 가마니고 보리의 양은 겨우 한 줌이라고 가정해보자. 다른 조건은 똑같다. 개중엔 우량한 쌀알도 있고, 쬐그만 보리알도 있다. 이제부터 백 가마니의 쌀과 한 줌 보리를 체친다. 모두 거르고 난 후, 체 위에 걸러진 녀석들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시작부터 양이 얼마 안 되는 보리알보다, 오히려 백 가마니 중 소수일지언정 큼직한 쌀알들이 체 위에는 더 많이 남아있을 수도 있다. 현실에서도 기형(보리)보다는 정상(쌀)이 훨씬 더 많이 존재한다. 그래서 검사를 거쳐보면 우량 쌀알도 보리알만큼 체 위에 많이 남게 된다. 결국 선별검사에서 고위험으로 판정되었다는 것만으로는, 실제로 내가 보리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애초에 전체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여기까지의 길고 복잡한 내용을 읽는 수고를 아끼지 않은 분이라면, 코로나19 선별검사에 대한 아래의 전문적 서술마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사실 내가 위에 든 임신중절의 예시는, 불완전한 정보가 비가역적이고 비극적인 결과까지 야기하는 극단적인 경우를 가정한 것이다. 하지만 만약 내가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쉽고 간결한 것이 정확함 이상으로 중요하다>라는 휴 제임스에게 반박하고 싶다면 이 논리를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제임스, 너는 물리학자니까 전자와 원자핵에 대해서 대충 설명해도 괜찮을지 몰라. 모든 사람이 아이언맨처럼 가슴팍에 아크 원자로를 달고 있지는 않잖아? 그러니까 핵융합에 대해 재미 삼아 주워들은 내용이 다소 불완전해도, 사람들의 건강과 인생에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은 없지. 하지만 모든 사람이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 바람에, 나처럼 의학적인 정보를 전하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틀리면 치명적일 수 있다고. 나는 정확한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당신은 누구의 편을 들겠는가?
검사의 정확도를 나타내는 네 가지 지표를 소개하면서, 민감도와 특이도를 동시에 높이는 것은 어렵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그 한계 속에서도 과학자들은 적절한 타협점을 잘 찾아낸다. 상황에 맞게 더 중요한 것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며, 정확성과 신뢰도를 최적화한다. 당장 목숨과 관련된 질환을 검사에서 놓친다면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에 ‘병이 있을 때 병이라고 판정하는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쪽으로 검사를 조정해야 한다. 한편, 확진검사를 받는 것이 비용과 노력이 많이 필요한 질병에서 가짜 양성 판정이 남발된다면 큰 낭비일 것이다. 그렇다면 ‘병이 없을 때 병이 없다고 판정하는 확률’을 높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식으로 조정한다. 검사라는 도구가 딱 한 가지 일면만 가질 이유가 없는 것처럼, 커뮤니케이션도 그렇다.
사실 나는 쉬움과 정확함이 동시에 성취하기 어려운, 그래서 양자택일의 갈등이 필연적인 것이라고 여겨왔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경험이 쌓이니, 어쩌면 꼭 그렇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듣는 이의 여건과 감정을 배려한다면 그 상황에서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연스레 드러난다.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정보가 있다. 어떤 날에는 지적 호기심이 넘쳐흐르는 나머지 세계적 석학의 번뜩이는 인사이트가 담긴, 참고문헌만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라도 기꺼이 탐독하게 된다. 하지만 퇴근길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지하철 구석에 꼬깃꼬깃하게 서있을 때면 그냥 멍하니 쳐다볼 유튜브 토막영상에 목마르게 된다. 개인적 건강에 대한 전문상담이 목적이라면 블로그나 인스타가 아니고 병원을 통해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기후변화에 대한 수천 페이지의 논문을 읽는 수는 없는 노릇이니, 영향력 있는 인물이 명료한 메시지로 정리해주는 것이 유익할 수도 있다. 세상의 필요가 다양한 것처럼, 과학 커뮤니케이션도 쉬움과 정확함 어느 한쪽의 일방향으로만 치우칠 이유는 없다.
오늘도 쉬움과 정확함 사이에서, 적당한 균형점을 찾으려고 나름대로의 분투 중이다.
<참고 문헌>
[1]Petersen, A. K., Cheung, S. W., Smith, J. L., Bi, W., Ward, P. A., Peacock, S., Braxton, A., Van Den Veyver, I. B., & Breman, A. M. (2017). Positive predictive value estimates for cell-free noninvasive prenatal screening from data of a large referral genetic diagnostic laboratory.American journal of obstetrics and gynecology,217(6), 691.e1–691.e6.